한국을 대표하는 미술작품을 대라면?

‘루브르’라는 단어를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써 넣으면 연관검색어로 무엇이 뜰까? 가볍게 검색 버튼을 클릭하면 루브르의 대표적 소장품인 '모나리자'가 산뜻하게 뜬다.
 
그렇다면 ‘국립중앙박물관’을 써 넣으면 무엇이 뜰까? ‘국립중앙박물관 입장료’ ‘국립중앙박물관 가는 길’이 뜨더니 다소간 생뚱맞아 보이는 ‘예술의 전당’까지 보인다. 박물관 규모로는 세계 6위, 관람객 수로는 세계 10위이자 아시아 1위, 15만 점의 유물과 작품을 보관하고 있는 대한민국 제1의 박물관이지만 연관검색어에 대표작품, 대표유물이 아니라 입장료와 가는 길이 뜨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박물관, 미술관의 역사는 물론 고고학, 미술사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점, 여러 번의 국제전쟁과 일제강점기, 나라를 거의 통째로 박살냈던 한국전쟁 등으로 인한 치명적인 파괴는 많은 유물과 작품들이 우리 손을 떠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런 비극을 극복하고자 번듯한 박물관도 만들고, 공부 열심히 해서 연구자들도 많이 길러냈으며,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기 위해 외국으로도 많이 뛰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조금씩 모여 그나마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뭔가 여전히 아쉽다. 건물도 짓고, 사람도 가르치고, 물건도 찾아오고 있는데 뭔가 아쉽다. 모두가 인정하는 명품, ‘루브르’ 하면 '모나리자'하는 것처럼 딱 떠오르는 명품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안견과 몽유도원도>는 우리의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한 ‘명품만들기 프로젝트’ 관점하에 주목할 만한 책이다. “굳이 명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냐”, “만들어진 명품이 진짜 명품이냐” 등 복잡하게 들어가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런 어려운 얘기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책부터 들춰보기 시작한다. 

 
한국미술사의 또다른 이름, 안휘준

저자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

저자 이름이 들어가는 자리를 보니 ‘안휘준’이라는 이름 석 자가 선명하다. 안휘준은 누구인가? 안휘준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면 어디 가서 그래도 미술사 책 좀 넘겼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것이고, 모른다면 미술사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갈 길이 멀구나 하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머나먼 미국 땅으로 건너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미술사, 그것도 한국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우리나라 대학에서 처음으로 개설된 미술사학과에서 교수를 시작해(그는  한국에서 공채제도를 통해 교수가 된 첫 번째 사례이기도 하다) 32년간 한국미술사를 가르치며 28권의 책과 118편의 논문을 써냈다. 아니, 정확한 표현을 쓰자면 토해냈다.

제자들 또한 화려해 현재 한국에서 미술사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열이면 아홉이 그의 제자일 가능성이 높다. 대중적으로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물론 학계, 관계, 언론계, 미술계 등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그에게 한국미술사를 배우지 않은 사람, 적어도 그의 책을 교과서로 삼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약간의 과장을 버무린다면 안휘준은 한국미술사라는 것을 출범시키고 지금까지 만들어온 장본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안휘준이라는 사람이 선택한 안견과 '몽유도원도'라는 주제를 가진 책이다.

안휘준의 전공은 조선 초기 회화사로, 이 책은 그가 수행한 안견과 '몽유도원도' 연구의 엑기스를 모아놓은 것이다. 한글과 영문으로 된 논문,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 참고문헌과 자료, 관련도판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미덕을 이런 것들로만 추어올릴 수는 없다. 책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그런 미덕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이 책에 있다는 얘기다.

 
<안견과 몽유도원도>

무엇보다 이 책은 소스가 참 풍부하다. 안견이라는 사람과 '몽유도원도'라는 작품은 스토리가 풍부하다는 면에서 참 훌륭한 작가이고 작품이다.

TV드라마 사극에서 몇 년을 주기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세조, 즉 수양대군과 그 주변의 이야기이다. '몽유도원도'는 형인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안평대군이 후원했던 안견의 작품으로,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광경을 안견이 듣고 불과 3일 만에 그려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이 신비스러운 그림에 당대의 명사들이 찬시를 덧붙인다.

유력한 왕족이었던 안평대군 주위에는 특히 시서화에 능한 명사들이 많았는데 이 가운데 세종조를 대표하는 인물 21명이 그림을 찬하는 시를 지은 것이다. 이 21명의 명사들 가운데는 신숙주, 정인지, 박연, 김종서, 박팽년, 이현로, 성삼문 등 우리가 익히 들어본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여기에 명필로 소문이 난 안평대군이 직접 붓을 들어 문장을 적으니 그림과 시와 서예가 한 곳에 모인 것이 바로 '몽유도원도'이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안견 이야기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는 과정에서 죽어나간 사람들 가운데 동생 안평대군이 있다는 사실은 드라마를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 그런데 통상 이렇게 정적들 가운데 핵심인물이 제거되면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패키지로 제거되기 마련인데 안평대군의 후원을 받던 안견은 용케 목숨을 건진다. 목숨을 건진 정도가 아니라 안견의 아들은 후일 벼슬길에 나아가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줄을 제대로 갈아탄, 성공적인 환승 사례라고 할 것이다. 도대체 안견은 어떻게 살아났는가?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감지한 안견은 안평대군에게서 멀어지려고 안평대군이 아끼는 먹을 훔친다. 그리고 안평대군이 보는 앞에서 훔친 먹을 일부러 떨어뜨려 의도적으로 대군이 화가 나게끔 만든다. 그렇게 안견이 안평대군으로부터 멀어진 이후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안평대군 그룹은 제거되지만 안견만은 살아남게 된 것이다. 이건 프랑스 혁명 이후 자코뱅당의 당원으로 활동하며 자코뱅당 지도부의 그림을 그리던 자크 루이 다비드가 나폴레옹이 황제에 오르자 황급히 나폴레옹 쪽으로 기울어 그의 대관식 그림을 그렸던 모양새와 유사해 보인다.


to be continued :
한국미술의 명품을 위하여 - <안견과 몽유도원도>(2)로 이어집니다.

글 | 학술팀 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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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륜동 전씨 2010.09.03 17:40 신고 / Delete / Reply

    안휘준 선생님, 인자해 보이네요~ ^^

    • 그렇죠? 아마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기자간담회날인 것 같습니다. 간담회 마치시고 뿌듯하신 표정..^^

      by 사평 at 2010.09.06 08:50 신고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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