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과 미술/양정무 지음/22,000원/사회평론

<상인과 미술>을 읽다 보니 불현듯 머릿속에 소설 책 제목 하나가 스쳐지나갔습니다.
 바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입니다. <상인과 미술>에서 다루고 있는 회화혁명의 양상이 그 소설의 제목과 묘하게 겹쳐졌거든요.

 
 
'
엄청나게 많고, 믿을 수 없게 고급스러운' 르네상스 미술.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르네상스 시대에 생산된 미
술작품은 다른 시대와 비교해보면 작품수가 너무 많고, 지나치게 호화스럽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상인과 미술>은 바로 이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르네상스를 다룬 책들은 많이 있지만 <상인과 미술>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르네상스를 다룹니다. 미술 작품이 가진 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대신 그 작품을 물질적 대상, 더 나아가 상품으로 상정하고 이를 소비하는 사회 메커니즘의 하나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서 잠시 눈을 돌려 당시 사용했던 안료는 무엇이었는지, 왜 그것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작품을 구입했던 사람들의 신분은 어떠했는지 등등, 예술 이외의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죠. 
  

대가들의 백스테이지를 훔쳐보다

화려한 의상의 모델들이 도도하게 워킹을 하는 런어웨이의 백스테이지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한번쯤은  "프로젝트 런어웨이"란 프로그램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패션잡지사가 무대인 미드 "어글리 베티"에도 종종 패션쇼의 백스테이지가 등장하죠. 거기서 보이는 백스테이지는 화려한 런어웨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아니, 완전 시장바닥이죠. 제 시간에 맞춰 옷을 만들기 위해서 고칠 부분을 이로 뜯는가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길거리를 종횡무진 달리기도 하고, 옷을 입었다 벗었다 고쳤다 말았다하며 난리법석을 떠는데요, 한마디로 아비규환입니다.
 

중세 시장의 풍경


<상인과 미술>은 
고상하게만 보이는 미술 세계에도 이처럼 요란스러운 백스테이지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는 상인과 화가가 작품 가격을 두고 깎느니 못 깎느니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고, 구매자들이 직접 나서서 이 부분에는 꼭 값비싼 물감만을 사용하라며 요구하기도 합니다. 상인들은 이 와중에 사재기를 통해 작품을 비싸게 되팔기도 하고, 거래를 성사 또는 파기시키면서 미술 작품 생산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미술 작품이 재테크의 수단이었던 것이 요즘 세상일만은 아니었던 거죠. 

한편, 중세에 종교화가 크게 발달한 것도 다 나름의 백스테이지가 있습니다. 흑사병이라는 재앙이 온 유럽을 휩쓸자, 화려했던 부와 명예도 죽음 앞에 무기력해지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귀족과 거부들은  너도나도 수도원으로 달려가 거액을 기부하기 시작했죠.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사후 세계에서의 구원을 보장받고자 했던 그들의 욕망은 수도원의 재정을 넉넉하게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서 뜻하지 않게 기독교 미술이 크게 발전된 것입니다.

두 폭짜리 제단화/장 푸케/1452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도 사실은 거액의 기부로 그려진 두 폭짜리 제단화입니다. 왼쪽 그림에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수도원에 거액을 기부한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이 그려진 목적은 "얘가 신앙이 깊어서 이렇게 많은 돈을 기부했으니 구원 좀 해주세요" 인 것이죠. 성스런 명화의 탄생 뒤에 세속적인 배경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상인과 미술>은 미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르네상스가 막 꽃 피던 남부 유럽의 시대상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술이야말로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척도가 되어왔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상을 통해 미술의 본질을 되묻다

이쯤에서 감히 예술 앞에서 물질을 논하는 게냐며 분노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인과 미술>이 미술을 철저히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왔던 미술의 상품성을 짚어보며, 다양한 각도에서 미술의 총체적 의미를 짚어보자는 것입니다. 미술에 내포된 물질문화의 영향력을 강조한다고 해서 예술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공허하기만 한 말의 성찬에서 벗어나 작품의 제작 과정과 사회적 맥락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미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신의 사랑을 위하여/데미안 허스트/1999

뱅크시의 쥐/뱅크시


왼쪽 위의 해골은 꼭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소품 같지만 사실은 데미안 허스트란 영국 작가의 미술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입니다.  이 작품으로 데미안 허스트는 생존 작가 중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이전 최고가 역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었다죠). 얼마냐고요? 무려 1억 달러입니다. 정말 상상도 안되는 액수이지요.
 사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가격이 높은 이유를 예술적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현대 미술이 자본주의에서 자리잡은 위치와 비즈니스로서 미술 시장이 가지는 상품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만 1억 달러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허스트의 작품이 시장이 요구하는 화제성, 파격성, 그리고 작품을 구매하는 부호들의 과시적 소비욕구 충족이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있기에 가능했던 금액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해골 옆에 있는 쥐 그림은 허스트와 여러 모로 대비되는 영국의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의 작품입니다(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G20 홍보포스터에 그래피티를 했다가 국격을 훼손했다고 고소당한 문제의 그 쥐가 바로 뱅크시의 쥐입니다). 뱅크시는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며 길거리에 그래피티를 하는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게릴라 화가입니다. 허스트와 달리 뱅크시의 작품에는 가격도 없고 저작권도 없습니다. 그저 길거리에 그려놓기 때문이기도 하고, 뱅크시 스스로도 돈을 받고 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권위를 조롱하고 자본주의와 기성 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은 그림이 유독 많습니다.

이 두 작품의 차이는 비단 가격만이 아닙니다.
사용하는 재료도 극명하게 갈립니다. 허스트가 실제 해골에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넣어 작품을 완성한 반면(허스트는 <상인과 미술>을 읽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미술이 가진 과시적 소비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뱅크시는 길거리 어디에라도 그릴 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렸습니다(언제든지 경찰을 피해 도망가기 쉬워야 하니까요).

두 화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은 단순히 개인 기호의 차이를 넘어선, 또 미술이라는 영역을 넘어선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 자체가 우리 시대가 가진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돈으로 못할 게 없는 화려한 소비의 시대와 그 이면에 소외받은 자들이죠. 허스트와 뱅크시의 두 그림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결과물이자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통 점잖지 못하다며 따지기를 꺼리는 예술품의 시장 가격, 사용 재료 등을 탐구해나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거대한 시대, 그 자체와 마주치게 됩니다.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기

<상인과 미술>에서는 이것을 "시대의 눈"이라고 부릅니다. 그림 한 장에 한 시대의 모습이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인과 미술>에서는 미술작품을 천재적인 개인의 예술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 사회구조와 변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시대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술작품의 물질적 토대를 강조하는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미술은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는 미술을 끌어안으면서 공명하며 변화해 가는 것이죠. 우리가 다빈치, 김홍도 같은 거장들을 통해 과거와 대화하듯 미래의 후손들도 우리 시대의 작품과 재료, 그 사회상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를 좀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요?

결국 그림을 보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림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고 과거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상인과 미술>의 주무대는 르네상스기 남부 유럽이라는 먼 옛날의 시공간이지만 그 영향력은 단순히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시대의 눈"을 제공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눈으로 작품을 바라
보고 계신가요?
그림 안에 넘실대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시대의 지식과 경험, 사람들의 감정을  <상인과 미술>을 통해서 "시대의 눈"으로 함께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글 | 교양학술팀 맛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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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1 18:22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2012.03.27 16:18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2012.04.05 18:07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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