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아이패드 얘기입니다. 헌 책 냄새가 좋다며, 일부러 책에 얼굴을 묻고,  책을 손에 든 촉감이 플라스틱 질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면서, 전자책 단말기를 보며 혀를 차는, 종이책 지상(至上)주의자들로 가득한 출판계에서도, 아이패드에 관한 관심은 놀랍습니다.

"이건 전혀 다른 거라며?
읽고 흔들고, 칼라도 되고, 재미있고, 할 수 있는 것도 정말 많다면서?"

그런데, 아이패드에 대해 호의적인 것은 한국 출판계뿐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뉴요커(The New Yorker)> 매거진에 실린 'Publish or Perish'라는 기사를 보니, 미국 출판계도 아이패드에 대한 기대가 대단합니다.  

바로, 아이패드가 전자책을 대중화시키고, 출판계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인데요, 이 배경에는 아마존에 대한 미국 출판계의 불신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 <뉴요커(The New Yorker)> 매거진에 실린 아이패드 관련 기사(Publish or Perish?)

이 기사에서 설명하는 아마존과 출판사 간의 기존 전자책 거래방식을 보면 놀라운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마존이 자사의 전자책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전자책 가격을 9.99달러로 묶어놓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판매가보다 높은 돈을 출판사에 지급한 점입니다.  

즉, 소비자가 26달러인 도서 한 권을 구매할 때, 아마존은 출판사와의 계약에 따라 이 가격의 50%인 13달러를 출판사에 지급하고, 판매가는 9.99달러로 정합니다. 전자책 한 권이 팔릴 때마다 3달러의 손해를 입지만,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을 선점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전자책의 시장가격을 자신의 뜻대로 정할 수 없게 된 출판사들의 불만입니다. 

이에 따라 2009년 말까지, 아마존은 전자책 시장의 80%를 점유하게 되고, 9.99달러가 전자책의 시장가격으로 굳어지는 듯하자, 출판사들은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출판사들은, "만약 대중들이 책이 10달러짜리라고 인식하게 된다면, 이 산업은 끝장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If it’s allowed to take hold in the consumer’s mind that a book is worth ten bucks, to my mind it’ game over for this business.")

Amazon CEO Jeff Bezos Debuts The New Kindle DX At NYC&apos;s Pace University

아마존 CEO Jeff Bezos가 아마존의 새 eBook 단말기인 kindle DX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출판사에서는 도저히 손을 써 볼 수조차 없이 정해져버린 전자책 시장의 룰을 한 순간에 바꿔버린 것이 아이패드의 등장입니다. 아이패드가 아마존의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아마존의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룰을 마냥 고집할 수는 없게 된 것입니다.  

아이패드가 등장한 바로 다음날 맥밀란(Macmillan)출판사의 대표인 John Sargent는 아마존의 찾아가 가격 재협상을 요구합니다.  아마존은 Macmillan사에서 요구한 전자책의 새로운 룰을 수락합니다. 

☞ <매일경제> 기사: 아마존, 맥밀란 재협상의 함의

바로, 출판사가 시장가격을 정하고, 아마존은 시장가격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받는 에이전시 모델(Agency Model)입니다.  이 에이전시 모델에서는, 출판사가 가격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자책 시장 전체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애플 CEO Steve Jobs가 iPad의 iBooks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아이패드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이패드의 등장이 출판사는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굳어져 버린 아마존/킨들의 독주 시스템에 제동을 걸고, 잃어버린 가격 결정권을 되찾아 왔다는 점에서, 출판계는 아이패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애플이 언제까지 이 에이전시 모델을 고수할 지, 이 모델이 과연 출판사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을지는 출판계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군요. 이 글 역시, 애플과 음악/TV업계 간에 가격을 둘러싼 긴 갈등을 겪은 것을 모두들 기억한다는 의미심장한 뉘앙스로 끝맺고 있습니다.

기사는 미국 출판계를 둘러싼 여러가지 모습을 함께 그려내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서가에 묻혀있던 출판사의 백리스트를 다시 살려냈던 아마존의 공헌에 대한 기억, 그리고 출판사들이 고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아마존만큼의 진지한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 반성하는 부분이 우리 출판계의 모습과 겹쳐져 재미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출판계는 온통 전자책과 온라인 콘텐츠로 아우성이고, 온통 관심이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에 쏠리고 있을 때 우리가 잊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을 판다는 것은 계속해서 포크가 들어오는 8인치의 파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첫 번째 포크는 대형서점 체인이었고,
두 번째는 독서를 안 하는 사람들,
세번째는 아마존이고,
이제 그 포크는 전자책이 되었습니다." 

- 코네티컷 주 메디슨의 동네 책방 주인의 말 -


인터넷 서점과 전자책 시장이 가져온 이 모든 변화에 계속해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그렇지만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작은 동네 서점 말입니다. 

☞ 지난 포스트 : 우리는 과연 전자책을 사랑할 수 있을까? 

                                                                                  글 | 디지털사업부 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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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상수동 책방 2010.04.30 14:31 신고 / Delete / Reply

    마지막 서점 주인의 말 좀 퍼갈께요 ㅋㅋ

    • 네, 트윗에서 올린 글을 봤습니다. 퍼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작은 동네 책방이라고 했지만, 원문에서는 'independent bookstore'- 즉, 체인이 아닌 독립된 하나의 서점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independent bookstore가 상수동 책방과 정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by 사평 at 2010.04.30 18:52 신고 / delete
  2. Skyjet 2010.04.30 18:39 신고 / Delete / Reply

    물론 애플이 절대선이고 기존 사업자의 구세주라는 생각은 위험하지만 (어디까지나 애플은 이윤 창출에 충실한 기업입니다. 절대선도, 절대악도 아니에요.) 애플의 강대한 영향력이 기존 구성 체제를 와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점에서 볼 때, 한시적으로 나마 출판사에 이로운 입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이제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계속 지켜봐야 할 겁니다. '모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는 의미심장한 명제가 있는 만큼.

    • '절대 권력의 절대 부패'는 여기서도 떠올려볼 수 있겠네요. ^^

      기존 체제를 뒤흔들었다는 것에 출판계는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그렇다면 애플이 없었다면? 출판계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그런 고민은 있습니다.

      애플의 등장을 자신들도 예상하지는 못했던 것이었던 만큼 결국 그냥 한번의 어부지리로 끝나는게 아닐까 싶은 걱정이 있어요.

      원문에서도 보면, 미 출판계의 빅6중, 5곳은 바로 에이전시 모델을 수락하지만, 랜덤하우스만 이를 지켜보고 있죠. "전자책은 1-2년 사이에 끝날 문제가 아니니까, 급할 것이 없다" 라는 대답을 하면서요. ^^

      by 사평 at 2010.04.30 19:01 신고 / delete
  3. 그린비 지우 2010.05.14 18:02 신고 / Delete / Reply

    잘 읽었습니다. 저희 블로그의 관련글 엮어놓고 가요.^^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이라 저희 오픈캐스트에도 발행했습니다.ㅎ http://opencast.naver.com/GB622/30
    (출판사에 '디지털사업부'가 있는 경우도 흔치 않은데, 역시!랄까. 이런 고민을 하고 계셨군요. ^^)

    • 그린비의 오픈캐스트와 함께 발행되다니, 정말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한테도 큰 공부가 되겠네요.

      (오웃..! 그런데,'출판사에 디지털 사업부가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 라는 것은 저희가 숨기고 있는 비밀인데요..ㅠ.ㅠ )

      by 사평 at 2010.05.17 09:21 신고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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