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땅, 아프리카

그러나 우리는 아프리카를 모른다.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는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의 질적 도약을 위해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아프리카를 기존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였다.






2013년 9월 외교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떠오르는 대륙, 아프리카가 부른다.’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아프리카에 대한 세계의 시각이 ‘절망의 대륙’에서 ‘희망의 대륙’으로 바뀌는 전환기적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블루오션으로서의 아프리카를 ‘자원개발의 보고’가 아닌 ‘새로운 시장’으로, 기존의 원조 개념에서 교역 중시로, 사고의 전환을 이룸으로써 아프리카와 상생의 파트너십을 만들어나갈 방침”임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아프리카는 내전과 빈곤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피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내전과 빈곤은 엄연한 현실이다. 외교부 보도자료가 나간 그해, 2013년 1월에는 말리에서 내전이 발생하였고, 2011년 1인당 GDP 최하위 30개 국가 중 아프리카 국가는 23개나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프리카를 ‘떠오르는 대륙’이라며 기회의 땅으로 접근하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인 낭만주의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록 내전과 빈곤이 아프리카의 현실일지라도 이것이 아프리카의 모든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에도 분명 ‘가능성’은 있다. 다만 그 가능성이 ‘검은’ 이미지에 갇혀 제대로 발견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절망의 대륙이라는 검은 이미지와 새로운 시장이라는 밝은 이미지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 그 어둡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아프리카를 이해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왜 ‘프랑스어권 흑아프리카’인가?

 

그동안 아프리카는 대륙이라는 단일한 대상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아프리카에는 50여 개가 넘는 국가들이 있다. 이들을 대륙이라는 하나의 틀로 바라보는 것은 아시아라는 틀에서 한국과 아랍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왜곡된 접근법은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서술 대상을 ‘프랑스어권 흑아프리카’에 한정하였다.

프랑스어권 흑아프리카는 말리,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토고, 카메룬 등 사하라 사막 이남의 프랑스 식민지였던 국가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아프리카는 식민지배의 영향 때문에 공용어로 유럽의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아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이다. 그런데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도 알제리로 대표되는 아랍권의 북아프리카와 흑인 중심의 사하라 이남 흑아프리카는 역사적, 인종적, 문화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 이 책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중에서도 북아프리카가 아닌 흑아프리카에 초점을 맞추었다.


프랑스어권 흑아프리카의 특징은 프랑스어 상용으로, 프랑스는 여타 국가들과는 달리 식민지에 프랑스어 학교를 세워 동화정책을 실시하였다. 이와 같은 프랑스 식민정책의 특수성으로 인해 프랑스어는 흑아프리카의 발전에서 양날의 검으로 남아있다. 프랑스어 사용은 이 지역이 프랑스에서 독립한 후에도 식민의 유산인 동화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동시에 식민의 유산을 능동적으로 수용하여 필요에 따라 창의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프랑스어 사용에서 나타나는 굴레와 역동성을 함께 알아보는 것은 냉소적 비관주의와 근거 없는 낙관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대학교 불어문화권연구총서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문화권연구소는 1989년 설립되어 전문학술지 《불어문화권연구》를 중심으로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전 세계 프랑스어권 지역의 문화 전반에 대한 학제적·종합적 연구를 수행해왔다. 지역 간 교류가 활성화되고 문화 상호 간의 관심과 이해의 필요성이 점점 더 커져가는 오늘날의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불어문화권연구총서를 발간하게 되었다. 이는 그간의 축적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다른 문화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이해를 촉발하고자 하는 작은 노력의 일환이다.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퀘벡, 카리브 해 지역 등의 문화 현상 전반, 언어·문학·예술·역사·사회·정치 등을 아우르는 총체적 현실에 대한 인문학적 시각의 저작들을 계속 발간해 나갈 것이다.     




검은 그러나 어둡지 않은 아프리카

저자
이영목, 오은하, 노서경, 이규현, 심재중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4-04-07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가능성의 땅, 아프리카 그러나 우리는 아프리카를 모른다.[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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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요기와 뒷이야기의 르네상스가 아닌 
생각과 글로 읽는 개념의 미술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신준형 교수가 20여 년간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하며 길어낸 결과물을 세 권의 책으로 묶었다. 3권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는 2004년 『파노프스키와 뒤러―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그해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2권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 역시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라는 제목으로 2007년 출간되어, 200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는 한 저자가 같은 공부 길에 쓴 두 권의 책이 모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기록이었다. 기존의 저작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개정작업과 더불어, 2013년 새로 집필한 1권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을 더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해온 긴 여정을 일단락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북유럽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오랜 시간 천착한 그의 글은,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자기 성찰로 시작해,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는 무엇인가라는 깊은 고민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장편 미술사’의 탄생,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3부작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저자가 위스콘신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던 1998년 봄과 여름에 시작되어 2013년 봄에 완결된다. 학부생 시절부터 어림잡아 2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초판이 출간된 순서는 지금의 시리즈 순서와는 정반대인데, 가장 먼저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파노프스키와 뒤러―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간)가 나왔고, 뒤를 이어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라는 제목으로 2007년 출간)이 나왔으며, 지난해 신간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이 나왔다. 


1권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은 문화의 주변부와 중심부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한 르네상스 미술사다. 완벽한 르네상스인이 되려고 했던 ‘주변’의 뒤러와 르네상스를 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중심’의 미켈란젤로. 동시대의 두 위대한 미술가를 통해 북유럽과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2권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은 종교투쟁이라는 사건을 통해 본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사다. 종교개혁은 천 년 넘게 서구의 보편(Catholic)으로 군림해온 한 종교의 체질을 바꾼 사건이다. 이때 신교와 구교는 미술을 부정하거나 옹호하는 행위를 통해 정치적 이념을 강력하게 선전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예술의 이상이 가장 교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3권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는 하나의 해석이 어떻게 보편 지식으로 올라서는지 추적한다. 20세기 초 독일 출신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같은 독일 태생 화가 뒤러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정립해나간다. 그의 도상 연구 ‘아이코놀로지’는 르네상스 미술사를 읽는 모범답안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르네상스를 서구 이성의 승리로 보는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관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 전체를 통과하며 무르익어 간다. 나아가 한 권의 책은 그 안에 또 다른 책의 문제의식을 싹틔우고 있다. 우리는 따로 떨어진 세 권의 책을 읽을 뿐이지만, 전문 연구자의 길을 간 한 사람의 20년 세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문학에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 즉 장편소설은 그 안에 ‘시간’이 흐르는지를 두고 판단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장편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장편 미술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종종 인용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처럼, 세 권의 책을 거쳐 우리가 다다르는 곳은 신준형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르네상스 시기 미술에 대한 총체적 이해다. 

3부작을 잇는 시작과 끝, ‘주변’이라는 인식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종합안내서가 아니다. 세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르네상스 미술의 A부터 Z까지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다. 다른 누구의 미술사가 아니라, 신준형이 쓴 미술사, 그가 가진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르네상스 미술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미술사인가? 
미술사가 주변적인 학문이라면, 한국에서 서양 미술사는 더더욱이나 주변적이다. 미국에서 유학을 했지만 한국에 돌아와 르네상스 미술 연구자로 살아가는 저자 또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업으로 하며 산다는 것. 그게 바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자, 책의 출발점이다. “제가 처음에 서양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 다른 인문학을 하는 분들이 저에게 해준 말씀이 ‘한국 사람이 서양 것을 하면 일생 전달자 노릇밖에 못 한다’는 것이었어요. 서양에서 이러저러한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달해주는 것. 예전에는 그 정도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부록 「저자와의 대화」, 57쪽) 
어찌 보면 3부작이 ‘뒤러’로 시작해서 ‘뒤러’로 끝나는 것은 딱 맞는 귀결이다. 뒤러는 서양 고전문화의 중심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 독일 출신의 화가이기 때문이다. 뒤러는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중심에 들어가겠다는 자의식으로 불타오르는 인물이었다. 그가 베네치아 여행 중에 그린 《장미 화관의 축제》(1506)를 보면, 독일에서 유래한 묵주기도라는 주제라든지, 당시 독일 땅의 황제나 가신들 얼굴을 곳곳에 집어넣는 등 독일성이 한껏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주제의 그림을 베네치아적인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낸 점은, 베네치아 그림보다 더 베네치아적인 그림으로 본때를 보여주리라는 강박을 반영한다. 책에서는 독일 유대계 출신으로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망명한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가 뒤러를 연구의 본령으로 삼은 데에도, ‘중심에 필적한 주변’ 뒤러를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여긴 것이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한국어로 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대상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하나는 뒤러식 접근, 즉 “서양 언어로 쓰이는 논저들에 필적하는 수준을 지향”하며 “최선을 다해서 한국어로 양질의 연구 저술을 써나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전공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소개하고 가르친다는 자세로 저술이 임하는 것”이다. 저자가 앞에 썼던 두 권의 책, 지금의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와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은 첫 번째 방식을 염두에 둔 것들이다. 

이후 자신의 미술사 쓰기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가장 나중에 쓴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에서는 앞의 두 방식이 아닌 제3의 방식을 시도했다. 중심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 채로 쓰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 학자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을 써보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뒤러와 미켈란젤로를 주변과 중심에 배치하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계에 부딪친다. “그런데 서양 학자들은 물어보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별로 대단치 않은 아마추어적인 질문일 수도 있죠. 예를 들면, 제가 뒤러와 미켈란젤로를 주변과 중심의 시각에서 본 것도 서양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이야기죠.”(부록 「저자와의 대화」, 57쪽) 
3부작을 마무리한 시점에 새롭게 찾은 길은 교류사다. 그는 “서양 학자들은 동양을 몰라서, 동양 전공하는 사람들은 서양을 몰라서 못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 그리스도교 미술의 동아시아 전파, 미술에서 일어난 혼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포르투갈어를 새로 배웠고, 오래전에 익힌 일본어를 다시 들춰보았다. 이 공부가 또 어떤 길로 접어들지 알 수는 없지만, 신준형의 공부는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연구에서 종종 소외되는 ‘나’, 즉 연구 주체를 되살려낸 점에서 그렇다. 
자기 문제의식. 그것은 자기 한계이기도 하지만, 모든 출발은 거기에서 이루어진다. 학문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거창하다면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훌륭한 학자들은 일생 자기를 떠나지 않는 문제의식 하나를 붙들고 씨름한다. 자기 한계를 확인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공부는 매번 고통스러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흔히 볼 수 없다. 수상한 인문학 열풍이 부는 지금,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가 우리에게 귀한 이유다.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세트

저자
신준형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14-04-1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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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청춘의 멘토


영국 웨일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일생 덕분에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러셀은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집필한 『수학원리』를 펴내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20세기 영미철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분석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업적을 남겼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거부해 케임브리지 강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반전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레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노르웨이로 가는 수상비행기가 사고 났을 당시 흡연 칸에 탄 덕분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그의 삶은 인류의 파국을 막는 일에 집중된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세계 각국에 핵무기 위험성과 전쟁 회피의 중요성을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 불복종 운동을 선도해 89세의 나이에 1주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케네디 암살 진상 조사를 후원하는가 하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반대해 94세의 나이에 ‘베트남 연대 운동’을 시작했다. 죽기 전날까지도 중동 지역의 평화를 당부하는 글을 쓰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러셀은 1964년과 1971년 두 차례에 걸쳐 마하트마 간디, 존 F. 케네디, 마틴루터 킹, 알버트 슈바이처 등과 함께 ‘미국 대학생이 뽑은 1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평화주의, 비폭력, 피압박층에 대한 도움, 열패자에 대한 관심 등을 주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의 지성,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 역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러셀을 꼽는다.

러셀에 대한 흠모와 관심은 국내에서도 이에 못지않았다. 한국 법학계에서 형법의 대가로 첫손을 꼽혔던 서울대 김형두 교수는 고교시절 식민지 소년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접한 버트런드 러셀의 책이 낙천적 성격을 가져오게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으며, 통섭의 전도사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어린시절 러셀의 빛나는 지성과 유려한 글에 이끌려 러셀처럼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삶을 꿈꾸었노라고 고백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이상묵 교수도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사로 버트런드 러셀을 꼽았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세계적인 명성과 존경을 얻으며 아흔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던 버트런드 러셀이기에 그의 삶의 궤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청춘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길을 찾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


1950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입증하듯이, 러셀은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셀 자신이 말년에 완성한 자서전은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깔끔한 문체, 재기 넘치는 표현, 위대한 학자치고는 너무나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성으로 가득 차 있다. 러셀의 일생을 거쳐 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자서전은,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이자 20세기 지성사를 꿰뚫는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의 저서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 아인슈타인, T. S. 엘리엇, 디킨슨, 케인스, 화이트헤드, 조지프 콘래드, 비트겐슈타인 등 20세기의 거인들과의 교류한 이야기는 러셀의 인생이 20세기 지성사 그 자체임을 실감케 한다. 또한 전쟁으로 치닫는 불행한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던 러셀의 삶을 통해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핵 철폐운동,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 등의 근원들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이 가지의 목적에 헌신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는인간이 과연 어떤 것을 이해할 있는가였으며, 하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있는가였다. 그리고 당당히 말한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라고.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러셀이 자서전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아름다운 연인들과 수학의 확실성을 사랑했고, 고통 받는 세계를 아파했다. 극단의 시대에 개인의 탁월함과 사회에 대한 기여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하고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을 함께 고민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러셀은 개인의 자유를 믿는 동시에 사회가 약자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과 사회 모두를 지키고자 했고 어느 한 쪽을 희생하는 어떤 방안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보의 선두주자였지만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이러한 러셀의 인생은 오늘날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참여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셀의 파란만장한 백 년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인생은 뜨겁게』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꿈꾸게 하면서도 인생을 긴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인생 교과서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책이 될 것이다. 




인생은 뜨겁게

저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14-0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가슴 뛰는 삶을 꿈꾸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20세기에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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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과 미술/양정무 지음/22,000원/사회평론

<상인과 미술>을 읽다 보니 불현듯 머릿속에 소설 책 제목 하나가 스쳐지나갔습니다.
 바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입니다. <상인과 미술>에서 다루고 있는 회화혁명의 양상이 그 소설의 제목과 묘하게 겹쳐졌거든요.

 
 
'
엄청나게 많고, 믿을 수 없게 고급스러운' 르네상스 미술.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요?
르네상스 시대에 생산된 미
술작품은 다른 시대와 비교해보면 작품수가 너무 많고, 지나치게 호화스럽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상인과 미술>은 바로 이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르네상스를 다룬 책들은 많이 있지만 <상인과 미술>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르네상스를 다룹니다. 미술 작품이 가진 미적 가치를 탐구하는 대신 그 작품을 물질적 대상, 더 나아가 상품으로 상정하고 이를 소비하는 사회 메커니즘의 하나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작품의 예술적 가치에서 잠시 눈을 돌려 당시 사용했던 안료는 무엇이었는지, 왜 그것을 사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작품을 구입했던 사람들의 신분은 어떠했는지 등등, 예술 이외의 관점에서 한번 살펴보자는 것이죠. 
  

대가들의 백스테이지를 훔쳐보다

화려한 의상의 모델들이 도도하게 워킹을 하는 런어웨이의 백스테이지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한번쯤은  "프로젝트 런어웨이"란 프로그램을 보신 적 있으실 겁니다. 패션잡지사가 무대인 미드 "어글리 베티"에도 종종 패션쇼의 백스테이지가 등장하죠. 거기서 보이는 백스테이지는 화려한 런어웨이와는 거리가 멉니다. 아니, 완전 시장바닥이죠. 제 시간에 맞춰 옷을 만들기 위해서 고칠 부분을 이로 뜯는가 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길거리를 종횡무진 달리기도 하고, 옷을 입었다 벗었다 고쳤다 말았다하며 난리법석을 떠는데요, 한마디로 아비규환입니다.
 

중세 시장의 풍경


<상인과 미술>은 
고상하게만 보이는 미술 세계에도 이처럼 요란스러운 백스테이지가 존재한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곳에서는 상인과 화가가 작품 가격을 두고 깎느니 못 깎느니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고, 구매자들이 직접 나서서 이 부분에는 꼭 값비싼 물감만을 사용하라며 요구하기도 합니다. 상인들은 이 와중에 사재기를 통해 작품을 비싸게 되팔기도 하고, 거래를 성사 또는 파기시키면서 미술 작품 생산의 주역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미술 작품이 재테크의 수단이었던 것이 요즘 세상일만은 아니었던 거죠. 

한편, 중세에 종교화가 크게 발달한 것도 다 나름의 백스테이지가 있습니다. 흑사병이라는 재앙이 온 유럽을 휩쓸자, 화려했던 부와 명예도 죽음 앞에 무기력해지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귀족과 거부들은  너도나도 수도원으로 달려가 거액을 기부하기 시작했죠.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사후 세계에서의 구원을 보장받고자 했던 그들의 욕망은 수도원의 재정을 넉넉하게 채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결과로서 뜻하지 않게 기독교 미술이 크게 발전된 것입니다.

두 폭짜리 제단화/장 푸케/1452

'성모마리아와 아기 예수'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 작품도 사실은 거액의 기부로 그려진 두 폭짜리 제단화입니다. 왼쪽 그림에 손을 모으고 있는 인물이 바로 수도원에 거액을 기부한 주인공입니다. 이 작품이 그려진 목적은 "얘가 신앙이 깊어서 이렇게 많은 돈을 기부했으니 구원 좀 해주세요" 인 것이죠. 성스런 명화의 탄생 뒤에 세속적인 배경이 존재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상인과 미술>은 미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르네상스가 막 꽃 피던 남부 유럽의 시대상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줍니다. 그리고 미술이야말로 시대의 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척도가 되어왔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회상을 통해 미술의 본질을 되묻다

이쯤에서 감히 예술 앞에서 물질을 논하는 게냐며 분노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인과 미술>이 미술을 철저히 상품으로만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왔던 미술의 상품성을 짚어보며, 다양한 각도에서 미술의 총체적 의미를 짚어보자는 것입니다. 미술에 내포된 물질문화의 영향력을 강조한다고 해서 예술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공허하기만 한 말의 성찬에서 벗어나 작품의 제작 과정과 사회적 맥락을 확인하는 일이야말로 미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신의 사랑을 위하여/데미안 허스트/1999

뱅크시의 쥐/뱅크시


왼쪽 위의 해골은 꼭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소품 같지만 사실은 데미안 허스트란 영국 작가의 미술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입니다.  이 작품으로 데미안 허스트는 생존 작가 중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이전 최고가 역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이었다죠). 얼마냐고요? 무려 1억 달러입니다. 정말 상상도 안되는 액수이지요.
 사실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가격이 높은 이유를 예술적 측면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현대 미술이 자본주의에서 자리잡은 위치와 비즈니스로서 미술 시장이 가지는 상품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만 1억 달러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허스트의 작품이 시장이 요구하는 화제성, 파격성, 그리고 작품을 구매하는 부호들의 과시적 소비욕구 충족이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있기에 가능했던 금액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해골 옆에 있는 쥐 그림은 허스트와 여러 모로 대비되는 영국의 그래피티 화가 뱅크시의 작품입니다(네,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 열린 G20 홍보포스터에 그래피티를 했다가 국격을 훼손했다고 고소당한 문제의 그 쥐가 바로 뱅크시의 쥐입니다). 뱅크시는 경찰과 숨바꼭질을 하며 길거리에 그래피티를 하는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게릴라 화가입니다. 허스트와 달리 뱅크시의 작품에는 가격도 없고 저작권도 없습니다. 그저 길거리에 그려놓기 때문이기도 하고, 뱅크시 스스로도 돈을 받고 팔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권위를 조롱하고 자본주의와 기성 권력에 대한 저항정신을 담은 그림이 유독 많습니다.

이 두 작품의 차이는 비단 가격만이 아닙니다.
사용하는 재료도 극명하게 갈립니다. 허스트가 실제 해골에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넣어 작품을 완성한 반면(허스트는 <상인과 미술>을 읽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미술이 가진 과시적 소비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죠!), 뱅크시는 길거리 어디에라도 그릴 수 있는, 그리고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렸습니다(언제든지 경찰을 피해 도망가기 쉬워야 하니까요).

두 화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대상은 단순히 개인 기호의 차이를 넘어선, 또 미술이라는 영역을 넘어선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작품 자체가 우리 시대가 가진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바로 돈으로 못할 게 없는 화려한 소비의 시대와 그 이면에 소외받은 자들이죠. 허스트와 뱅크시의 두 그림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결과물이자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보통 점잖지 못하다며 따지기를 꺼리는 예술품의 시장 가격, 사용 재료 등을 탐구해나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거대한 시대, 그 자체와 마주치게 됩니다.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기

<상인과 미술>에서는 이것을 "시대의 눈"이라고 부릅니다. 그림 한 장에 한 시대의 모습이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상인과 미술>에서는 미술작품을 천재적인 개인의 예술성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인식과 사고, 사회구조와 변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시대의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미술작품의 물질적 토대를 강조하는 것 역시 이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미술은 사회를 반영하고 사회는 미술을 끌어안으면서 공명하며 변화해 가는 것이죠. 우리가 다빈치, 김홍도 같은 거장들을 통해 과거와 대화하듯 미래의 후손들도 우리 시대의 작품과 재료, 그 사회상을 함께 바라보며 우리를 좀더 잘 이해하지 않을까요?

결국 그림을 보는 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그림을 통해 과거를 들여다보고 과거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상인과 미술>의 주무대는 르네상스기 남부 유럽이라는 먼 옛날의 시공간이지만 그 영향력은 단순히 거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시대의 눈"을 제공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눈으로 작품을 바라
보고 계신가요?
그림 안에 넘실대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한 시대의 지식과 경험, 사람들의 감정을  <상인과 미술>을 통해서 "시대의 눈"으로 함께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글 | 교양학술팀 맛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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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1 18:22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2012.03.27 16:18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2012.04.05 18:07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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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살면서 미래를 보았던 거인 버트런드 러셀,
그 가장 짧은 지혜의 글들을 만나다

런던통신 1931-1935 (Mortals and Others)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14,800원

버트런드 러셀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번은견과 먹는 사람들의 모임명예 간사를 만난 적이 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가 소리쳤다. ‘폐병으로 온몸이 마비됐던 프라하 사람이 견과 식이요법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체코슬로바키아 헤비급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는 얘기도 못 들어보셨단 말이에요?’ 나는 헤비급 챔피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항변하자 그녀는 시험 기간에 함부로 비프스테이크를 먹다가 1등을 놓친 사람들의 사례를 마구 퍼부어댔다. 나무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은 나무 열매를 먹고 살아서 놀라운 수학 실력을 가질 수 있었나 보다.”


러셀이 정말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그가 만들거나 과장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 그렇다.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의 이야기를, 그것도 매우 웃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피아노 할부금을 내지 못할까봐 폭동을 일으킨 수병들, 아이들 급식으로 베이컨을 준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채식주의자 어머니, 정부에 반항하기 위해 휴가 때마다 위스키를 훔치는 병사, 피아노 세일즈맨에게 습격당한 어느 가장의 패배, 파산 위기에 빠졌지만 과자 만드는 요리사 세 명을 포기하지 못했던 귀족의 비스킷 사랑
……. 『런던통신 1931-1935』는 농담 또는 만담 같은 이런 이야기들을 경유해 러셀 특유의 비판적인 지혜에 도달한다.



암흑의 한가운데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미국 허스트 그룹 계열 신문들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1930년대 초반 러셀은 죽은 형을 대신해 세 명이나 되는 그의 전처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고 결국 실패로 끝난 실험학교를 경영하느라 살림이 매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원고료가 1년에 1,000파운드나 되었던 이 일자리가 매우 유용했는데, 4년 만에 연재가 끝난 것은 러셀이 휴가를 함께 보내자는 허스트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허스트는 영화 <시민 케인>의 모델이었던 전설적인 언론 재벌이다. 그는 아내였던 여배우 마리온 데이비스에게 선물로 사준 저택에서 찰리 채플린이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같은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러셀이 직접 쓴 이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이런 사연으로 러셀은 자신의 저서 중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적인 책을 남기게 되었다. 러셀은 자서전에서 실험학교의 실패와 두 번째 이혼 등을 겪었던 1930년대 초반이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고백했지만, 『런던통신 1931-1935』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글들에 그늘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곤란을 겪었던 개인적인 고난의 흔적이 아니라 그에게 파국을 예감하게 했던 시대가 남긴 흔적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는 대공황과 파시즘과 나치즘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러셀은 훗날 자서전에서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세계는 광기에 이끌렸다.”는 말로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권력을 장악했고 미국을 습격한 대공황이 유럽 전역으로 확장됐던 그 시대를 회고했다. 그 후 80년이 지났지만 그 시대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직도 누군가는 전쟁을 원하고, 누군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가난하기를 원하며, 누군가는 소수자들이 모든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변방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러셀은 때로는 논리학의 체계를 재정립한 학자다운 이성으로, 때로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운 필력으로, 그러한 불의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어둠을 넘어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빛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한다.


그러나 러셀은 시대의 어둠만을 보지 않았다. 런던통신 1931~1935』는 답답한 마음에 바람처럼 불어오는 유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믿는 낙관과 희망이 가득한 책이다. 러셀은 핵전쟁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사람들이 진정 원한다면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단지 세상 뒷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러셀의 지혜에는 그 진실을 목격하고도 세상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언젠가는 괜찮아질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는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안내하고 투덜거리는 이들의 등을 밀어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날마다 조금씩 즐거워지도록, 그리고 지혜로워지도록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이 남긴 어떤 책보다도 쉽고 친근하고 유머 있는 책이다. 신문 칼럼인 탓에 네 쪽을 넘는 글이 거의 없는 이 책은 에세이별 분량도 적고 소재도 일상에서 찾은 것들이어서 러셀의 명성 때문에 오히려 부담을 느꼈던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러셀이 다룬 소재들은 우리 모두의 생활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는 판매원에게 시달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러셀은 우리는 사고 싶지 않았다」에서 휴가를 가는 대신 그랜드 피아노를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도에게 습격당한 가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피아노를 놓을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지만 강도는 벽을 조금만 헐면 거실에 놓인 피아노의 꼬리가 멋진 침실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처량하면서도 웃긴 이야기의 결말은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역전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악순환을 향한 비판이다. 이런 글을 몇 편 읽다보면 러셀이 이 소소한 에피소드 끝에 어떤 사색을 남겨두었을지 호기심과 기대를 품게 된다.


이처럼 사소한 일상의 의문을 통해 가려진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고 깊은 지혜를 전하는 러셀은 조롱 섞인 유머와 풍자의 대가이기도 했다. 러셀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몇 번이나 미국의 거부 록펠러를 언급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경쟁자를 시장에서 축출하는 그의 경영 방식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는다. 대신 러셀은 독자로 하여금 그와 함께 웃는 사이에 스며들 듯 록펠러의 실체를 깨닫도록 만든다. “존 록펠러 씨는 재산이 얼마 없는 가정에서 자란 것을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 중 하나로 꼽는다고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자녀들은 이런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느라 애써왔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 많은 재벌들이 구사하는 화법이기도 하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책 한 권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 한 마디의 말이면 충분한 사람도 있다. 러셀은 낭비와 우회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문 칼럼에 들어갈 원고지 몇 장만으로도 전쟁에 열광하는 정치가들 때문에 대중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메시지를 민담처럼 재미있게 전할 수 있었다. 아마존의 어느 독자는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보다 좀 더 현명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서평을 남겼다. 그 평을 런던통신 1931~1935』의 에세이 하나하나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글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조금씩 더 현명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라고 말이다.

 


 글 | 교양학술팀 동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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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이 유쾌하다?!

<유쾌한 감옥>.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책은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감옥생활을 경쾌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 ‘유쾌한’ 수감생활의 주인공은 오로빈도 고슈입니다. 이름도 특이하죠? 인도 사람이랍니다.

듣도 보도 못한 이 사람이 감옥에서 1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하여 책으로 냈느냐 하면요. 우리가 인도의 독립운동에 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마하트마 간디일텐데요. 오로빈도는 간디보다 앞선 시대에 인도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으로 인도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후에 간디의 비폭력평화주의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은 장본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죠. 우리나라 조선시대 태종이 닦아놓은 나라의 기반 위에 세종이 그 꽃을 활짝 피우며 ‘세종대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듯이 말입니다.

독립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오로빈도 역시 억울한 누명을 쓰고 투옥됩니다. 오로빈도는 반영무장투쟁 그룹의 정신적 지도자였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형벌인 독방에 감금됩니다. 인도인이었지만 상류층에 속했던 오로빈도는 식민당국인 영국에서 어린 시절부터 유학했고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를 졸업한 인물이었습니다. 상류층의 특권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기꺼이 자신의 지성과 열정을 조국의 독립 운동에 바친 사람인데요. 이렇게 대단한 인물이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지독한 독방생활을 견디기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처절한 고통의 끝에 다다른 초월의 경지

먹을 수 없는 음식과 누울 수 없는 자리, 무엇보다 비좁은 공간에 홀로 갇혀 있어야 하는 고통에 오로빈도는 조금씩 실성해가는 자신을 느낍니다. 그런데 고통에 빠져 며칠을 보내다가 의식이 뒤엉켜 통제 불능의 상태로 접어드는 순간, 바로 지옥의 끝에 닿은 듯한 그 찰나에 오로빈도는 모든 고통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로빈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그 순간 그는 자신의 신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인도는 힌두교가 국교랍니다). 마치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 열반에 이른 것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 오로빈도에게 이제 감옥생활의 고통은 오히려 우스운 일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의 정신은 더욱 맑고 선명해지기 시작합니다.

오로빈도와 동료들은 따로 감금되어 있다가 다시 만나게 되는 공판 장소를 오히려 반겼고, 만나면 큰 소리로 웃고 즐겁게 이야기 나누느라 바빴습니다. 공판이 거듭될수록 그들에게 재판 자체는 시시한 쇼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나중에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재판장에 앉아 느긋이 철학책을 읽기까지 합니다. 말 그대로 ‘유쾌한’ 감옥생활이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1년 후 그는 무죄석방됩니다. 감옥에서의 수기로 더 유명해지고 내면이 더욱 단단해진 그는 출옥 후에도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2011년, 우리가 오로빈도에게 주목하는 이유

힌두교인이 아니기에 오로빈도가 경험한 신성한 경지를 100% 공감하기는 어렵지만, 육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더 높은 차원의 정신력,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깊이 있는 유머와 여유를 보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 승리가 무엇인지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고매할 수 있는지 증명해준 오로빈도이기에 저급한 현대 문화 속에 휩쓸려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게다가 우리 역시 과거에 식민지배의 아픔을 겪었지요. 비록 영성으로 인내해낸 오로빈도와는 차이가 있지만, 그 고귀한 지성의 힘만큼은 우리 선조들에게서도 동일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편, 영성이라는 것도 우리 모두 자신의 정신과 영혼에 대해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낯선 이야기만도 아닐 것입니다.

오로빈도는 우리 인간이 ‘외계의 감각에 갇혀 감옥살이를 하는 수인(囚人)’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쫓기듯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지적이지요. 번역을 해주신 김상준 선생님께서도 그래서 바로 지금 이 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계십니다. 물질만능주의와 타인의 평가 속에 갇혀 죄수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로빈도가 이야기합니다. 감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사는 게 감옥 같다면 그 감옥, 유쾌하게 즐겨라!


글 | 학술팀 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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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diaspora). 그리스 어로 ‘흩어진 사람들’을 의미하며, 우리말로는 이산(離散)이라고 번역한다. 고국, 가족,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처지를 말한다. 인류사에서 유대인들의 처지가 디아스포라의 전형이다. 한민족의 경우도 근현대사에서 디아스포라를 경험했다. 예컨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사람들과 재일교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한국이 명실공히 다문화사회로 진입한지도 수 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를 떠나고 들어오고 있다. 나나 내 가족이 어느날 이민을 결심해서 이주자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이주자가 갑자기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제 디아스포라는 나와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대학교 남호엽 교수는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에서, 디아스포라가 무엇인지, 디아스포라를 겪는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지 밝히고 있다.


근대사회는 이주의 시대이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이동은 자연스러운 삶의 형식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주 현상은 익숙한 곳의 테두리를 벗어나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과정이다. 이주자들이 낯선 곳에 직면하는 현실이 예사롭지 않다. 근대사회에서 이주 현상은 중립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 사회정치적인 과정이다. 이주 주체에게 새로운 공간은 뿌리내림과 정체성의 도전 장소이다. 특히 이주자들은 디아스포라(diaspora)의 처지에 있으며, 그(그녀)는 다문화사회의 소수자라고 말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주체는 분열적인 존재 양태를 보인다. 디아스포라 주체에게는 일상생활의 관행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국민 국가가 만든 제도들이 억압적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에게는 조국(선조의 출신국), 고국(자기가 태어난 나라), 모국(현재 '국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의 삼자가 분열해 있으며 그와 같은 불열이야말로 디아스포라적 삶의 특징이라고… 다수자는 대부분 자신의 선조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에 '국민'으로 속해 있다. 즉 조국·고국·모국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삼자의 지배적인 문화관이나 가치관은 서로 많이 다르고 자주 상극을 이룬다"(서경식 2007:114).

디아스포라 주체는 분열적인 자아를 가지며, 이것 때문에 삶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이 고통은 단지 심리적인 차원, 주관적인 정서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당히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규정하는 구조적인 요인들이 개입한다. 이른바 국민국가가 질서화한 일상생활의 관행들이 있으며, 이것은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는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한다.

서경식 선생은 일본에서 대학교수로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이다. 재일한국인으로 그는 해외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항상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다. 여권의 재입국허가 기한을 확인해야 한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공교육을 받고 세금을 내면서 학자로서 살아가고 잇는데, 해외에 나갔다가 입국할 때 '허가' 여부가 기한에 의해 조건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테니 설명을 덧붙이자면, 내 국적은 한국이기 때문에 나는 대한민국이 발행한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는 해외여행을 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나 자라고, 직장과 집이 있고, 가족과 친구가 사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내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일본 법무성의 '재입국허가'가 필요하다. 나는 일본에서 '특별영주'라는 카테고리에 분류돼 있다. 이것은 재일외국인 가운데서는 상대적으로 가장 안정된 법적 지위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입국허가 없이 일본 밖으로 나가면 다시 입국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니, 원칙적으로 재입국허가 없이는 재입국할 수 없다."(같은 책 p.194)

국민국가는 안정된 질서를 추구하며, 애매한 위치에 있는 주체들, 즉 이미 정해져 있는 경계들 주변 언저리에 서 있는 주체들에게는 매우 억압적이다. 국민국가의 경계는 안과 밖의 구분이 뚜렷하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경계는 매우 차별적이다.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인 이유이든 경제적인 이유이든 간에,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경우 상당한 통제 기제가 작동한다. 이 경우 경계는 절대 고정 불변의 상황인가, 통제 기제가 추구하는 의미의 질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존엄하게 해주고 있는가? 경계가 가변적이라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지향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전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인가? 통제 기제가 자연화된 것에 불과하다면, '해체'와 '재구성'이 가능하다면, 역시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사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모색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경식 선생은 왜 일본에서 태어났는가? 그의 부친은 왜 일본으로 이주했는가? 왜 그의 가족들은 고난의 인생을 살았는가? 이러한 문제는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과 전후 일본사회의 성립, 한반도의 분단 등과 같은 역사적 국면들이 있고,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의 역학 기제가 자리한다.

서경식 선생과 가족들의 생애사는 주로 정치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표면화된다. 물론 디아스포라 현상의 근원에는 경제적인 차원들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의 팽창 과정 속에서 근대 사회는 모순이 응축 되었고, 이러한 상황이 개인사나 가족사에도 개입하고 있다. 그런데 디아스포라의 상황은 단지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아스포라의 사례들은 인류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흔히 다문화사회의 전형으로 미국사회를 언급한다. 미국사회는 이주의 역사 그 자체이다. 원주민들이 사는 땅에 유럽 백인들의 이주가 있었고, 곧바로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이주했다. 특히 흑인 노예들의 이주는 비자발적인 선택 혹은 강제 이주의 상황인 만큼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름 하여 'Black Atlantic diaspora' 상황이 발생하면서 다인종, 다종족, 다문화사회의 전형을 창출했다(Dwyer 2005: 501). 물론 20세기에 와서 수많은 아시아계 디아스포라가 미국 사회에 편입되기도 했다. 아울러 유럽의 경우도 다른 지역에서 이주 현상이 발생하였고, 디아스포라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이렇게 디아스포라는 소속감의 장소가 여러 곳이며 여러 경계들을 넘나드는 삶의 형식이다. 그래서 디아스포라 주체는 고정된 '뿌리들' 혹은 기원들에 도전하는 정체성을 가지며, 초국가적인 결속과 연결을 선호한다(Dwyer 2005: 501). 이렇게 디아스포라 공간을 사유하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직면하는 실체들 중 하나가 바로 경계(boundary)이다. 디아스포라 주체에게 현실은 항상 경계들의 등장이며, 이 경계들과 관계 설정이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즉 디아스포라 공간은 포함과 배제, 소속감과 타자성, '우리들'과 '그들'의 경계들이 경합하는 지점이다(Dwyer 2005: Fortier 2007: Crang 1998). 따라서 디아스포라 공간은 곧바로 정체성의 장소들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한다.

정체성의 장소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경계를 확보하고 있다(Pratt 1999). 하나의 장소가 고유성을 가지려면 다른 장소와 관계를 설정하면서 차별화 계기가 있어야 한다. 차이나타운이 하나의 장소로서 독특함을 유지하려면 그 장소 내부에서 고유한 성질들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장소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독자적인 경관들, 사회적 관행들이 있어야 한다.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그 장소에 자리한 경관과 관행들에 애착과 소속감을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경관과 관행들이 누군가에게 이질적인 느낌의 구조를 만든다면 그 사람은 외부자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장소는 일정한 차별화 전략의 산물이며, 그 장소는 영역화(territorialization) 과정이 작동한 결과물이다(Paasi 1997). 여기서 정체성의 장소는 공간 스케일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진다. 그 장소는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 고장, 우리 지역, 우리나라가 된다. 그래서 향토와 모국은 각각 지역적인 스케일과 국가적인 스케일에서 애착심을 야기하는 장소이다.

장소에 대한 애착은 장소감(sense of place)에 기초한다(Rose 1995).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애착이 가는 공간은 동일시의 장소감을 부추긴다. 나와 우리는 그 장소와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도 이러한 현상은 마찬가지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이주근로자로 와서 안산시 원곡동에 거주하는 사람은 그곳에 위치한 이슬람사원을 찾는다. 다문화마을로서 원곡동과 이슬람사원은 이주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생활공간이다. 그곳에서 단지 의식주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마음의 의지처가 필요하며, 그 역할을 종교시설이 해낼 수 있다. 그래서 안산시 원곡동은 다문화마을 특구로서 장소화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이슬람사원과 같은 경관들이 그곳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아울러 디아스포라 주체들에게 '배려의 정치'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바로 '장소의 정치'가 된다. 즉 다문화주체들이 소속감와 동일시라는 심리 기제가 발생할 수 있는 근거로서 장소 만들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반도에서 다문화장소의 탄생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다문화장소는 국토의 순결을 망치는 외래사조인가? 국토가 새로운 다양성, 역동성을 확보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걸음 더 나아가 이미 한반도에 살아왔던 사람들은 다양한 이주의 결과물들이 아닐까?

글 제공 | 뉴스인북 이진의 기자 (lifeinbook@gmail.com)
원문 출처 |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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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4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한국 총 실업률은 3.5%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그 2배 이상인 8.3%에 달한다. 88만원 세대,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어렵게 취업하는 졸업예정자),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등의 신조어에서도 이러한 청년층의 취업한파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청년층 중에서도 취업 한파를 더욱 심하게 느끼는 계층이 있다. 바로 “순수 인문”을 전공한 학생들이다.
 

취업 포털 사이트 '잡 코리아'에 올라온 4년제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모집 공고들

취업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모집공고들을 보면, ‘상경계열 전공자’를 뽑는다는 글은 있어도 ‘인문계열 전공자’를 뽑는다는 글은 거의 볼 수 없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인문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역사학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박사과정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길은 물론 교수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수직이 충분히 많지 않으므로 결국 일부는 다른 직종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 전문 분야를 살리면서 취직할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다.
 
공학 분야 같은 경우 굳이 대학이 아니라도 연구소나 일반 기업에 들어가서 자신의 전공을 살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문학 전공자들은 40대 중반이 되도록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느라 고생하며 모멸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시장에서 ‘인문대생’이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서 훨씬 더 낮다. 그러나 정말 '인문학’ 전공이 취업에 불리하기만 할까? 대기업 임원, 방송국 PD, 금융권 임원들 중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인문학’을 전공한 것, ‘인문대’를 졸업한 것이 실무에 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현 코오롱 신사업기획팀의 이수영 상무에게 ‘인문대생의 강점’에 대해 물었다.

Q: 인문대생이 회사에서 가지는 강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A: 인문대생이 가지는 강점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인문'이라는 게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는 거잖아요. 저도 그런 의미에서 책을 많이 읽고 세미나를 하고 그랬던 것 같구요.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어떤 사물을 바라볼 때 사고의 깊이와 폭, 이런 것들이 인문대를 다녀서 더 많이 훈련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Problem Solving이라고 하죠? 매일매일 해결해야 하는 어떤 문제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회사는 매일매일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때 정확하게 큰 그림으로 보고 그다음에 깊이 있게, 정확하게 근본적인 핵심 이슈에 대해서 빨리 파악해서 해결하는 능력이 굉장히 많이 요구되죠. 그런 사고 능력,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아주 많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하고,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CEO들에게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경영학 책을 읽는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하고 역사책, 철학책, 소설책 이런 것들을 읽는다고 하죠.
 
Q: 딱 원하는 인문학 전공자의 상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A: 문제해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경영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리더십하고 창조적 사고 능력이에요. 왜냐하면 나 혼자는 일을 못하거든요. 여러 사람들이 같이 해야만 되는 것이고, 나 혼자 하면 천년만년이 돼도 못합니다. 조직, 즉 여러 사람이 같이 일하는 조직에서 여러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끌어주는 능력, 그게 리더십입니다.
 
매일매일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이것은 이런 규정이 있어서 안 됩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그건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겠죠.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서 이렇게 보면 이렇게 해결할 수 있잖아요"라고 이야기를 해줘야죠.
 
그게 바로 창의성입니다. 회사에서 원하는 인간상은 리더십하고 창의성인데 그게 있어야 문제가 해결되고, 문제가 해결이 되면 사업이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이것은 안 돼"라고 하는 것이 '되도록' 만드는 게 사업이라는 거죠.
 
리더십과 창의성은 사람을 많이 만나고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일하게끔 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나갈 수 있는 인문학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 와서 그런 부분들을 잘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회사에서 가장 원하는 사람이죠.


즉 기술적 능력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능력도 충분히 회사에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능력은 토익점수나 자격증같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문학적 능력은 어떻게 길러질까?

인문대 출신(불어불문학 전공)으로서 금융계에 진출, 외환은행 부행장과 해외사업본부장까지 지낸 노찬 이수화학㈜ 상임고문은 사회 진출을 생각하는 인문대생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우선 대학시절에는 전공에 충실해야 한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전공에 올인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 나가서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를 미리 속단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인생은 지금 20대의 여러분이 상상하는 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공에 충실하지 않은 인문대생은 그 가치가 떨어진다
 
어느 회사에서 독일 현지법인에 파견할 직원을 뽑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독문과 출신의 직원이 응모를 했는데 "독일어 시 하나를 암송해보시오"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그 직원은 단 한 편의 시도 암송하지 못했다. 이 대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떤 인상을 받았겠는가? 연이어 물어보니 단지 독문과를 졸업했을 뿐이지 독일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독일의 문화를 잘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결국 무늬만 독문과 출신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독문과 출신을 보낼 필요 없이 경영대 출신 중에서 독일어를 조금 할 수 있는 직원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둘째, 외국어 서적을 최소 1만 페이지는 읽어야 한다. 

 1만 페이지라고 하면 언뜻 그 분량이 잘 와 닿지 않을지 모르나, 300페이지짜리 책 33권으로 대학 4년 동안 1년에 8권 정도 읽는 셈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문대 졸업생 중에는 1만 페이지는커녕 1,000페이지도 읽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이 상당수 있으며 심지어는 500페이지도 채 읽지 않고 졸업하는 학생을 본 적도 있다. 이런 학생들은 인문대를 졸업했다고 하더라도 인문대 출신이라는 장점을 포기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는 최소한의 권고량이다.
 
셋째, 목표를 정하고 일정한 금액의 돈을 모아보기를 권한다.

인문대생은 공부하는 분야의 특성상 돈, 경제, 경영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돈을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썩 즐기지 않는다.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뭔가 통속적이고 저급한 주제로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문대생도 경제, 경영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결국은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문대생이 경제나 경영과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돈을 모아보는 것이다.
 
물론 "나는 등록금도 내가 벌어서 학교도 간신히 다니는데 무슨 돈을 모아 보란 말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당신 같은 경우야말로 돈을 모아보아야 한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의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벗어나려면 돈과 정면승부를 해야 하며 대학시절의 경험은 그것이 실패의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평생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실용만을 강조하고 있다. 대학조차도 취업률로 평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순수 인문’을 전공한 대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문대’만의 장점을 살려 취업을 준비한다면, 바늘구멍 같다는 취업문도 좁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 제공 | 뉴스인북 조애리 기자 (joari80@gmail.com)
원문출처 <인문의 스펙을 타고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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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emundang 2010.08.04 16:01 신고 / Delete / Reply

    정말 좋은 말씀이네요. 대학생들이 새겨들어야할 것 같아요.
    저도 대학시절 독서를 소홀히 한 것을 후회하고 있죠.
    지금부터라도 한권씩 읽으려구요. 인문쪽 말이에요.
    그러면 불혹을 넘어설 때, 좀 괜찮은 아줌마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ㅎㅎ

    • 네,인문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지만 대학생 전체, 청년 모두를 위한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다양한 능력이 필요한데 그것들이 토익점수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인문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예문당님은 심지어 논어를 읽으셨자나요?^^

      by 사평 at 2010.08.05 09:17 신고 / dele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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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소식 전해드립니다.(설마 저희만 기쁜 건 아니겠죠? ^^)

출판사 편집자들이 꼽은 '2010년 상반기 최고의 책'에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가 뽑혔습니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지난 6월 20여개 출판사 편집부를 대상으로 상반기 결산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설문 내용은 '2010년 상반기 최고의 책',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인 출판사', '상반기에 놓치면 아쉬운 책' 등이었는데요, 감격스럽게도 '상반기 최고의 책'에 <삼성을 생각한다>가 뽑힌 것입니다.
 
'예스24' 기사에 따르면, 설문에 응답한 20곳 출판사 중 절반이 넘는 13곳의 편집자들께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꼽았다고 합니다. 저희와 같이 애지중지 책을 다듬고 만드는, 또 어떻게 보면 저희와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는 다른 출판사 편집자들께 '인정'을 받은 것이기에 그 기쁨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예스24' 사이트에 실린 관련 내용을 옮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상반기 최고의 책을 꼽아달라는 질문의 응답결과는 확연했다. 창비, 21세기북스, 위즈덤하우스 등 절반 이상의 출판사 편집인들이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을 꼽았다. 언론도 건드리지 않는 삼성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서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평이었다. 출간 이후 책의 내용을 증명이라도 하듯, 언론이 보여준 냉담한 반응은 오히려 독자들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사회평론 편집부는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과 출간 후 반응을 정리하여 <삼성을 생각한다 2> 두 번째 이야기로 펴냈다.

창비의 김성남 차장은 "거대 기업의 언론통제를 개인들이 소셜 네트워크 환경을 통해 열어나갔다. 이러한 방식이 미친 정치적 각성이야말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고 덧붙였고, 랜덤하우스 백지선 팀장은 "사법부는 삼성에 면죄부를 주었지만, 국민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이야기에 높은 호응을 보여주었다. 현재 한국 사회를 읽을 수 있는 단서"라고 이 책을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 꼽았다. 기타 여러 편집자들이 "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추천 사유를 덧붙였다."

그밖에 '상반기 최고의 책'으로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 그리고 하루키의 <1Q84>,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 <덕혜옹주> 등의 책이 추천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체 내용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또한 '예스24' 사이트에는 <삼성을 생각한다>의 편집자인 학술팀 김태균 대리의 인터뷰 기사도 동영상과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인터뷰에는 편집자로서 지금에서야 털어놓을 수 있는, 이 책의 출판 배경과 편집 과정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예컨대, 김 대리는 "처음 원고를 읽었을 때 이 원고가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을 못했다"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을 낸다고 하더라도 과연 사람들이 얼마나 볼까 고민"했다고 합니다. 또 자신의 '스타일'과는 다른(?) 김용철 변호사를 만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고충도 살짝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인쇄소에서 나올 때까지 이 책은 사회평론이 만들었죠. 그런데 책이 나온 순간 우리 손을 확 떠나버렸어요. 책이 혼자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만들며 제 존재를 증명하더라고요."

덧붙이자면, <삼성을 생각한다>가 자신의 그렇듯 존재를 증명하고 '상반기 최고의 책'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무엇보다 존재 증명의 과정에 적극 동참해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신 독자, 네티즌 여러분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기쁨이 저희만의 기쁨은 아닌 게 맞죠? ^^;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삼성을 생각한다>와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꾸벅!!

김태균 편집자의 인터뷰 기사 전문과 동영상을 보시려면,
아직도, 더 많이 삼성을 생각(해야) 한다 - <삼성을 생각한다> 김태균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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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emundang 2010.07.23 07:53 신고 / Delete / Reply

    축하드려요. 저도 참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었지요.
    더 밝은 내용으로... 다시 1위 자리에 오르시면 좋겠어요. :)
    우리 사회에 더 이상 이런 일이 없도록요. 그런데 그날 날이 올까요? ^^;

    •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께서도 "내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게 이해가 안된다"며 "이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사회인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씀하셨죠. 예문당님 말씀처럼 밝고 따뜻한 얘기를 담은 책들이 더 많이 사랑받는 때가 오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오도록 함께 노력해야겠죠. ^^;

      by 사평 at 2010.07.23 10:03 신고 / delete
  2. 추양 2010.07.23 18:46 신고 / Delete / Reply

    정말 기뻐요^^ 축하드립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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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 관심을 쏟고 있는 동안 그만 상반기가 끝나버렸네요.
그 바람에 미처 올 상반기 사회평론에서 펴낸 책들을 살펴볼 기회를 잡지 못했는데요,
다소 뒤늦었지만 올 상반기 독자님들께 선보인 사회평론의 책들을 아래에 간략히 소개 드립니다.

영어학습서와 학회지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차림상이 비교적 단촐합니다.
그렇지만 책 한 권 한 권이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와 무게는 일당백이라고 자부합니다.
실제 대부분 책들이 분량도 만만찮고 가격도 좀 쎄죠? ^^;



삼성을 생각한다 | 김용철 지음 | 2010-01-29 | 476쪽 | 22,000원
감히 주장하건대 올 상반기 최대의 문제적 도서. 저자가 7년간 직접 보고 겪은 삼성의 추악한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은 '삼성공화국'에서는 결코 화제가 되어선 안 되는 불온도서였다. 당연히(?) 주류언론들로부터 보도는 물론 광고조차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이미 15만 명에 가까운 독자들이 이 책을 구매함으로써 '진실'의 행렬에 동참했다. 

브루스 트리거의 고고학사 | 브루스 트리거 지음 | 성춘택 옮김 | 2010-02-26 | 632쪽 | 30,000원
고고학사를 하나의 독립된 고고학 분과로 발전시킨 고고학사 연구의 백미. '과거'를 연구하는 학문인 고고학이 '현재'의 사회, 문화 및 지성과 어떤 연관을 맺고 변화, 발전해왔는지를 '존재론적 유물론과 인식론적 실재론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1989년 초판을 새롭게 고쳐 쓴 2006년 개정판을 성춘택 경희대 사학과 교수가 번역했다. 

미디어저작권과 퍼블리시티권(形象權) | 유일상 지음 | 2010-03-05 | 575쪽 | 30,000원
'방북사건'의 주인공 임수경씨의 결혼식 장면을 호화 웨딩드레스가 유행한다는 TV뉴스 보도의 자료화면으로 방영했다면 이에 대한 초상권 침해 여부는? 저작권법, 특히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저작권과 사생활권의 중간 영역에 놓인 퍼블리스티권(형상권)에 대해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실용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문제의 정답은 책 속에!

글로벌 시대의 다문화교육 | 원진숙 외 지음 | 2010-03-22 | 294쪽 | 18,000원
국내 체류 외국인 100만 명, 다문화가정의 초중고생만도 약 2만5천 명에 이르고 있는 현재, 백의민족의 순혈주의는 더이상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서울교육대 다문화교육연구원의 전공 교수 7명이 전국의 교육현장에서 '다문화 교육론'을 가르칠 때 기본 교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집필한 책이다. 다문화라는 아직은 낯선,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세상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안전보장의 국제정치학 | 이수형 외 지음 | 함태영 박영준 엮음 | 2010-04-15 | 588쪽 | 30,000원
분단상황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전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안전보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한반도. 그럼에도 한때 이데올로기의 덧칠 없이는 '안전보장'을 논하기 어렵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다면 민주화시대 안전보장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안전보장 연구의 기초적 이론서라 할 수 있다. 
 
그램그램 영문법 원정대 13 - 결합하라! 렐러나운의 관계대명사 문장 | 장영준 글 | 어필프로젝트 그림 | 2010-04-16 | 174쪽 | 9,800원
2006년 2월 첫 권을 출시한 이래 182주 동안 어린이 영어 부문 연속 1위를 차지한 베스트셀러 시리즈의 13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복잡한 영문법 원리를 만화로 풀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7월말 14권이 나올 예정이며, 100만부 돌파를 곧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권장도서이자 (사)사단법인 영어교육평가연구회 추천도서.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수직 통합의 경제학 | 안현효 외 지음 | 2010-04-29 | 340쪽 | 30,000원
지난 10년 간 진행된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고, 그것을 토대로 전력산업의 합리적인 수직 통합을 제시한다. '민영화는 나쁜 것이고 공공성은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선언에서 그치지 않고,  해외사례에 대한 연구와 경제적/법적/정치적/사회적/안보적/환경적 관점에서 바라본 입체적인 접근을 통해 그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밝혀낸다.

인문의 스펙을 타고 가라 | 김경욱 외 지음 | 2010-05-12 | 356쪽 | 15,000원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는 "애플은 언제나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의 교차점에 있었다"며 기술 혁신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수의 인문학도들은 '어느 것도와 아무 것도 사이의 청춘'을 보내고 있다.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17명 선배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모았다.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 안휘준 지음 | 2010-06-23 | 392쪽 | 18,000원
중국미술의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도 중국미술보다 더 뛰어나 '청출어람'의 경지에 오른 한국미술의 우수성과 독자성에 대한 이야기를, '청출어람' 경지에 오른 약 60여 점의 작품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추사 김정희의 그림과 글씨, 조선 후기의 청화백자조차 60여 점에 들지 못할 만큼 '청출어람' 작품의 선정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시민과 세계 17호 | 참여사회연구소 엮음 | 2010-07-01 | 465쪽 | 15,000원
참여연대의 부설연구기관인 참여사회연구소에서 참여민주사회를 위한 정책개발과 대안이론을 모색하는 글들을 엮어 펴내고 있다. 이번호 특집 주제는 '연대의 도전 그리고 활로'로 '친복지연대를 꿈꾸며' '노동 양극화와 연대의 위기' '시민운동과 연대의 과제' '분단 극복의 유일한 길 : 연대와 협력' 등의 글이 실렸다. 동시대 논점으로는 '친환경 무상급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삼성을 생각한다 2 - 그 이어지는 이야기 | 사회평론 편집부 엮음 | 2010-07-12 | 344쪽 | 7,800원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 이후의 풍경은 우리 사회의 문제와 희망을 동시에 보여줬다. 이 책은 <삼성을 생각한다>가 미처 그려내지 못한 그같은 현실을 자료와 기록을 통해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을 생각한다>와 <삼성을 생각한다 2>는 두 권으로 나눠진 한 권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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