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서 21세기로 이어지는 청춘의 멘토


영국 웨일스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의 일생 덕분에 남들에게 말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었다.

러셀은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집필한 『수학원리』를 펴내 세계적인 수학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20세기 영미철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분석철학의 기초를 다지는 업적을 남겼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거부해 케임브리지 강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반전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 형을 선고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레닌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노르웨이로 가는 수상비행기가 사고 났을 당시 흡연 칸에 탄 덕분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그의 삶은 인류의 파국을 막는 일에 집중된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세계 각국에 핵무기 위험성과 전쟁 회피의 중요성을 알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 불복종 운동을 선도해 89세의 나이에 1주일간 투옥되기도 했다. 케네디 암살 진상 조사를 후원하는가 하면 미국의 베트남 전쟁 개입을 반대해 94세의 나이에 ‘베트남 연대 운동’을 시작했다. 죽기 전날까지도 중동 지역의 평화를 당부하는 글을 쓰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러셀은 1964년과 1971년 두 차례에 걸쳐 마하트마 간디, 존 F. 케네디, 마틴루터 킹, 알버트 슈바이처 등과 함께 ‘미국 대학생이 뽑은 10대 영웅’에 이름을 올렸다. “평화주의, 비폭력, 피압박층에 대한 도움, 열패자에 대한 관심 등을 주창”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세계의 지성, 미국의 양심’으로 불리는 노암 촘스키 역시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러셀을 꼽는다.

러셀에 대한 흠모와 관심은 국내에서도 이에 못지않았다. 한국 법학계에서 형법의 대가로 첫손을 꼽혔던 서울대 김형두 교수는 고교시절 식민지 소년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우연히 접한 버트런드 러셀의 책이 낙천적 성격을 가져오게 했다고 회고한 적이 있으며, 통섭의 전도사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도 어린시절 러셀의 빛나는 지성과 유려한 글에 이끌려 러셀처럼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삶을 꿈꾸었노라고 고백했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리는 서울대 이상묵 교수도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인사로 버트런드 러셀을 꼽았다.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에 세계적인 명성과 존경을 얻으며 아흔여덟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던 버트런드 러셀이기에 그의 삶의 궤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청춘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길을 찾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


1950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입증하듯이, 러셀은 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러셀 자신이 말년에 완성한 자서전은 수학 공식처럼 명쾌하고 깔끔한 문체, 재기 넘치는 표현, 위대한 학자치고는 너무나 진솔하고 따뜻한 인간성으로 가득 차 있다. 러셀의 일생을 거쳐 간 수많은 폭풍우와 일화들이 눈앞에 보듯 선명하게 회고되고 있는 자서전은, 비범한 사람의 비범한 인생을 그린 20세기의 가장 감동적인 자화상이자 20세기 지성사를 꿰뚫는 자서전으로 알려져 있다. 수학과 철학, 사회학, 교육, 종교, 정치, 과학 분야의 저서들이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 아인슈타인, T. S. 엘리엇, 디킨슨, 케인스, 화이트헤드, 조지프 콘래드, 비트겐슈타인 등 20세기의 거인들과의 교류한 이야기는 러셀의 인생이 20세기 지성사 그 자체임을 실감케 한다. 또한 전쟁으로 치닫는 불행한 현대사의 한가운데에서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던 러셀의 삶을 통해 세계대전, 볼셰비키 혁명, 핵 철폐운동, 케네디 암살, 베트남 전쟁 등의 근원들을 탐색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삶이 가지의 목적에 헌신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는인간이 과연 어떤 것을 이해할 있는가였으며, 하나는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있는가였다. 그리고 당당히 말한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라고.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러셀이 자서전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아름다운 연인들과 수학의 확실성을 사랑했고, 고통 받는 세계를 아파했다. 극단의 시대에 개인의 탁월함과 사회에 대한 기여를 조화시키고자 노력하고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을 함께 고민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러셀은 개인의 자유를 믿는 동시에 사회가 약자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과 사회 모두를 지키고자 했고 어느 한 쪽을 희생하는 어떤 방안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보의 선두주자였지만 소련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이러한 러셀의 인생은 오늘날 개인적 욕망과 사회적 참여 사이에서 고민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셀의 파란만장한 백 년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는 『인생은 뜨겁게』는 대학생과 젊은이들에게 가슴 뛰는 삶을 꿈꾸게 하면서도 인생을 긴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인생 교과서로서도 더할 나위 없는 책이 될 것이다. 




인생은 뜨겁게

저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14-02-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가슴 뛰는 삶을 꿈꾸는 청춘을 위한 인생 교과서20세기에서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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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살면서 미래를 보았던 거인 버트런드 러셀,
그 가장 짧은 지혜의 글들을 만나다

런던통신 1931-1935 (Mortals and Others)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14,800원

버트런드 러셀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번은견과 먹는 사람들의 모임명예 간사를 만난 적이 있다.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녀가 소리쳤다. ‘폐병으로 온몸이 마비됐던 프라하 사람이 견과 식이요법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체코슬로바키아 헤비급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는 얘기도 못 들어보셨단 말이에요?’ 나는 헤비급 챔피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항변하자 그녀는 시험 기간에 함부로 비프스테이크를 먹다가 1등을 놓친 사람들의 사례를 마구 퍼부어댔다. 나무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은 나무 열매를 먹고 살아서 놀라운 수학 실력을 가질 수 있었나 보다.”


러셀이 정말 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는 그가 만들거나 과장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 그렇다.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의 이야기를, 그것도 매우 웃기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피아노 할부금을 내지 못할까봐 폭동을 일으킨 수병들, 아이들 급식으로 베이컨을 준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채식주의자 어머니, 정부에 반항하기 위해 휴가 때마다 위스키를 훔치는 병사, 피아노 세일즈맨에게 습격당한 어느 가장의 패배, 파산 위기에 빠졌지만 과자 만드는 요리사 세 명을 포기하지 못했던 귀족의 비스킷 사랑
……. 『런던통신 1931-1935』는 농담 또는 만담 같은 이런 이야기들을 경유해 러셀 특유의 비판적인 지혜에 도달한다.



암흑의 한가운데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이 1931년부터 1935년까지 미국 허스트 그룹 계열 신문들에 기고한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1930년대 초반 러셀은 죽은 형을 대신해 세 명이나 되는 그의 전처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고 결국 실패로 끝난 실험학교를 경영하느라 살림이 매우 힘들었다. 그 때문에 원고료가 1년에 1,000파운드나 되었던 이 일자리가 매우 유용했는데, 4년 만에 연재가 끝난 것은 러셀이 휴가를 함께 보내자는 허스트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허스트는 영화 <시민 케인>의 모델이었던 전설적인 언론 재벌이다. 그는 아내였던 여배우 마리온 데이비스에게 선물로 사준 저택에서 찰리 채플린이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같은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러셀이 직접 쓴 이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는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이런 사연으로 러셀은 자신의 저서 중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적인 책을 남기게 되었다. 러셀은 자서전에서 실험학교의 실패와 두 번째 이혼 등을 겪었던 1930년대 초반이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고백했지만, 『런던통신 1931-1935』에는 그런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글들에 그늘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곤란을 겪었던 개인적인 고난의 흔적이 아니라 그에게 파국을 예감하게 했던 시대가 남긴 흔적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는 대공황과 파시즘과 나치즘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러셀은 훗날 자서전에서 양차 대전 사이의 기간, 세계는 광기에 이끌렸다.”는 말로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권력을 장악했고 미국을 습격한 대공황이 유럽 전역으로 확장됐던 그 시대를 회고했다. 그 후 80년이 지났지만 그 시대의 어둠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아직도 누군가는 전쟁을 원하고, 누군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 가난하기를 원하며, 누군가는 소수자들이 모든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 변방에 머무르기를 원한다. 러셀은 때로는 논리학의 체계를 재정립한 학자다운 이성으로, 때로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운 필력으로, 그러한 불의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어둠을 넘어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빛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한다.


그러나 러셀은 시대의 어둠만을 보지 않았다. 런던통신 1931~1935』는 답답한 마음에 바람처럼 불어오는 유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믿는 낙관과 희망이 가득한 책이다. 러셀은 핵전쟁을 피할 수 없으리라고 굳게 믿으면서도 사람들이 진정 원한다면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의 지혜는 단지 세상 뒷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러셀의 지혜에는 그 진실을 목격하고도 세상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언젠가는 괜찮아질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는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안내하고 투덜거리는 이들의 등을 밀어 세상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날마다 조금씩 즐거워지도록, 그리고 지혜로워지도록 

 

런던통신 1931~1935』는 러셀이 남긴 어떤 책보다도 쉽고 친근하고 유머 있는 책이다. 신문 칼럼인 탓에 네 쪽을 넘는 글이 거의 없는 이 책은 에세이별 분량도 적고 소재도 일상에서 찾은 것들이어서 러셀의 명성 때문에 오히려 부담을 느꼈던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러셀이 다룬 소재들은 우리 모두의 생활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는 판매원에게 시달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러셀은 우리는 사고 싶지 않았다」에서 휴가를 가는 대신 그랜드 피아노를 사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도에게 습격당한 가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피아노를 놓을 공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지만 강도는 벽을 조금만 헐면 거실에 놓인 피아노의 꼬리가 멋진 침실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 처량하면서도 웃긴 이야기의 결말은 생산과 소비의 관계가 역전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악순환을 향한 비판이다. 이런 글을 몇 편 읽다보면 러셀이 이 소소한 에피소드 끝에 어떤 사색을 남겨두었을지 호기심과 기대를 품게 된다.


이처럼 사소한 일상의 의문을 통해 가려진 세상의 진실을 드러내고 깊은 지혜를 전하는 러셀은 조롱 섞인 유머와 풍자의 대가이기도 했다. 러셀은 런던통신 1931~1935』에서 몇 번이나 미국의 거부 록펠러를 언급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경쟁자를 시장에서 축출하는 그의 경영 방식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는다. 대신 러셀은 독자로 하여금 그와 함께 웃는 사이에 스며들 듯 록펠러의 실체를 깨닫도록 만든다. “존 록펠러 씨는 재산이 얼마 없는 가정에서 자란 것을 자신에게 내려진 축복 중 하나로 꼽는다고 회고록에서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 자녀들은 이런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느라 애써왔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 많은 재벌들이 구사하는 화법이기도 하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책 한 권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단 한 마디의 말이면 충분한 사람도 있다. 러셀은 낭비와 우회가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신문 칼럼에 들어갈 원고지 몇 장만으로도 전쟁에 열광하는 정치가들 때문에 대중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메시지를 민담처럼 재미있게 전할 수 있었다. 아마존의 어느 독자는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보다 좀 더 현명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라는 서평을 남겼다. 그 평을 런던통신 1931~1935』의 에세이 하나하나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글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조금씩 더 현명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라고 말이다.

 


 글 | 교양학술팀 동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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