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요기와 뒷이야기의 르네상스가 아닌 
생각과 글로 읽는 개념의 미술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신준형 교수가 20여 년간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하며 길어낸 결과물을 세 권의 책으로 묶었다. 3권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는 2004년 『파노프스키와 뒤러―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그해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2권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 역시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라는 제목으로 2007년 출간되어, 200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는 한 저자가 같은 공부 길에 쓴 두 권의 책이 모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기록이었다. 기존의 저작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개정작업과 더불어, 2013년 새로 집필한 1권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을 더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해온 긴 여정을 일단락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북유럽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오랜 시간 천착한 그의 글은,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자기 성찰로 시작해,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는 무엇인가라는 깊은 고민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장편 미술사’의 탄생,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3부작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저자가 위스콘신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던 1998년 봄과 여름에 시작되어 2013년 봄에 완결된다. 학부생 시절부터 어림잡아 2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초판이 출간된 순서는 지금의 시리즈 순서와는 정반대인데, 가장 먼저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파노프스키와 뒤러―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간)가 나왔고, 뒤를 이어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라는 제목으로 2007년 출간)이 나왔으며, 지난해 신간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이 나왔다. 


1권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은 문화의 주변부와 중심부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한 르네상스 미술사다. 완벽한 르네상스인이 되려고 했던 ‘주변’의 뒤러와 르네상스를 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중심’의 미켈란젤로. 동시대의 두 위대한 미술가를 통해 북유럽과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2권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은 종교투쟁이라는 사건을 통해 본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사다. 종교개혁은 천 년 넘게 서구의 보편(Catholic)으로 군림해온 한 종교의 체질을 바꾼 사건이다. 이때 신교와 구교는 미술을 부정하거나 옹호하는 행위를 통해 정치적 이념을 강력하게 선전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예술의 이상이 가장 교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3권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는 하나의 해석이 어떻게 보편 지식으로 올라서는지 추적한다. 20세기 초 독일 출신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같은 독일 태생 화가 뒤러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정립해나간다. 그의 도상 연구 ‘아이코놀로지’는 르네상스 미술사를 읽는 모범답안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르네상스를 서구 이성의 승리로 보는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관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 전체를 통과하며 무르익어 간다. 나아가 한 권의 책은 그 안에 또 다른 책의 문제의식을 싹틔우고 있다. 우리는 따로 떨어진 세 권의 책을 읽을 뿐이지만, 전문 연구자의 길을 간 한 사람의 20년 세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문학에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 즉 장편소설은 그 안에 ‘시간’이 흐르는지를 두고 판단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장편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장편 미술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종종 인용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처럼, 세 권의 책을 거쳐 우리가 다다르는 곳은 신준형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르네상스 시기 미술에 대한 총체적 이해다. 

3부작을 잇는 시작과 끝, ‘주변’이라는 인식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종합안내서가 아니다. 세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르네상스 미술의 A부터 Z까지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다. 다른 누구의 미술사가 아니라, 신준형이 쓴 미술사, 그가 가진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르네상스 미술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미술사인가? 
미술사가 주변적인 학문이라면, 한국에서 서양 미술사는 더더욱이나 주변적이다. 미국에서 유학을 했지만 한국에 돌아와 르네상스 미술 연구자로 살아가는 저자 또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업으로 하며 산다는 것. 그게 바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자, 책의 출발점이다. “제가 처음에 서양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 다른 인문학을 하는 분들이 저에게 해준 말씀이 ‘한국 사람이 서양 것을 하면 일생 전달자 노릇밖에 못 한다’는 것이었어요. 서양에서 이러저러한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달해주는 것. 예전에는 그 정도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부록 「저자와의 대화」, 57쪽) 
어찌 보면 3부작이 ‘뒤러’로 시작해서 ‘뒤러’로 끝나는 것은 딱 맞는 귀결이다. 뒤러는 서양 고전문화의 중심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 독일 출신의 화가이기 때문이다. 뒤러는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중심에 들어가겠다는 자의식으로 불타오르는 인물이었다. 그가 베네치아 여행 중에 그린 《장미 화관의 축제》(1506)를 보면, 독일에서 유래한 묵주기도라는 주제라든지, 당시 독일 땅의 황제나 가신들 얼굴을 곳곳에 집어넣는 등 독일성이 한껏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주제의 그림을 베네치아적인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낸 점은, 베네치아 그림보다 더 베네치아적인 그림으로 본때를 보여주리라는 강박을 반영한다. 책에서는 독일 유대계 출신으로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망명한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가 뒤러를 연구의 본령으로 삼은 데에도, ‘중심에 필적한 주변’ 뒤러를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여긴 것이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한국어로 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대상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하나는 뒤러식 접근, 즉 “서양 언어로 쓰이는 논저들에 필적하는 수준을 지향”하며 “최선을 다해서 한국어로 양질의 연구 저술을 써나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전공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소개하고 가르친다는 자세로 저술이 임하는 것”이다. 저자가 앞에 썼던 두 권의 책, 지금의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와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은 첫 번째 방식을 염두에 둔 것들이다. 

이후 자신의 미술사 쓰기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가장 나중에 쓴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에서는 앞의 두 방식이 아닌 제3의 방식을 시도했다. 중심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 채로 쓰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 학자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을 써보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뒤러와 미켈란젤로를 주변과 중심에 배치하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계에 부딪친다. “그런데 서양 학자들은 물어보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별로 대단치 않은 아마추어적인 질문일 수도 있죠. 예를 들면, 제가 뒤러와 미켈란젤로를 주변과 중심의 시각에서 본 것도 서양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이야기죠.”(부록 「저자와의 대화」, 57쪽) 
3부작을 마무리한 시점에 새롭게 찾은 길은 교류사다. 그는 “서양 학자들은 동양을 몰라서, 동양 전공하는 사람들은 서양을 몰라서 못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 그리스도교 미술의 동아시아 전파, 미술에서 일어난 혼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포르투갈어를 새로 배웠고, 오래전에 익힌 일본어를 다시 들춰보았다. 이 공부가 또 어떤 길로 접어들지 알 수는 없지만, 신준형의 공부는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연구에서 종종 소외되는 ‘나’, 즉 연구 주체를 되살려낸 점에서 그렇다. 
자기 문제의식. 그것은 자기 한계이기도 하지만, 모든 출발은 거기에서 이루어진다. 학문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거창하다면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훌륭한 학자들은 일생 자기를 떠나지 않는 문제의식 하나를 붙들고 씨름한다. 자기 한계를 확인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공부는 매번 고통스러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흔히 볼 수 없다. 수상한 인문학 열풍이 부는 지금,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가 우리에게 귀한 이유다.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세트

저자
신준형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14-04-1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눈요기와 뒷이야기의 르네상스가 아닌 생각과 글로 읽는 개념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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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닥치는 대로 걸리는 대로 미술사(닥걸미)'의 이번 차례는 <알베르티의 회화론>(노성두 옮김, 사계절 펴냄)이다. 역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남의 회사 책이다. 다만 그 지위가 절판도서로 도서관에서만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에 자사 블로그에 독후감을 올리는 행위에 대한 부담이 다소간 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편 본좌의 이야기가 서양미술사 일변도에 타사 도서 중심이었던 점을 반성하며, 다음에는 자사에서 출판한 한국미술사 책, 안휘준 교수의 <안견과 몽유도원도>로 가 볼 것이다. 어쨌건 다음은 다음이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니, 이번에도 본 글에 오류가 있다 해도 특별히 책임을 지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섣불리 인용하지 말기를 권하는 바이다.

외울 게 많은 르네상스

역사라면 어떤 종류의 역사건, 뭔가가 엄청나게 몰리는, 그래서 시험범위에 들면 외워야 할 것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특정한 시대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1945년을 중심으로 한 앞뒤의 몇 년은 한국현대사에서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사이로 나라가 만들어졌다가 두 쪽 나기도 하고, 삼국지 마냥 수많은 영웅들이 무더기로 등장해 화려한 초식을 선보이며 스펙타클한 드라마를 써내려간다. 그래서 1945년 전후는 한국현대사에서 뭔가가 몰리는 시대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것처럼 이렇게 역사에서는 영웅과 천재, 엄청난 발명과 사건들은 대개 비슷한 순간에 빵 터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미술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그런 순간을 서양미술사에서 찾는다면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이탈리아도 그 한 장면일 것이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는 세기의 천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르네상스 초입의 이탈리아 출신 ○○○이었다. 여기서 ○○○이라고 쓴 이유는 그를 무언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볼로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것을 비롯해, 수학, 수사학, 시학 등을 공부했으며 회화와 건축에서 창작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운동경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부르넬레스키, 도나텔로, 마사치오 등 당대의 A급 예술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고, 책도 여러 권 남겼는데 고대 로마의 건축 유적을 조사하고 쓴 <로마 서술>, 건축에 대한 이론을 쓴 <건축론>, 조각에 대한 <조각론>, 그리고 회화에 대한 이론을 쓴 <회화론>이 있다.

화가들을 위한 본격 자기계발 실용서, 알베르티의 <회화론>

알레르티 상(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알베르티가 1435년에 라틴어 본을 저술하고 1436년 이탈리아어 본을 직접 번역 출판한 <회화론>은 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화가를 위한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이다. 총 3권으로 이루어진 <회화론>의 1권은 '화가가 알아야 할 원근법과 수학(기하학), 광학'에 대한 내용이며, 2권은 '회화의 구성요소', 3권은 '화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설명이다. 이론, 실기, 마음가짐까지 깔끔하게 구성된 시리즈의 순서는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로서 손색이 없다.

게다가 그는 아주 쿨하게 화가가 되지 않을 사람은 자신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 괜한 고생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 책은 화가를 위한 책이지 수학자, 철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므로 책을 읽는 독자들(화가가 될 사람들)은 여기에 나온 이론 정도만 알면 되고 그 이상은 몰라도 된다고 말한다. 시험 전날 족집게 선생님에게 엄한 것 물어봤다가 듣게 되는 '그거 시험에 안 나온다'는 쿨한 멘트의 전통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론, 실기, 품성...르네상스 화가가 되기 위한 3단계

어찌되었건 이 책은 저자의 의도를 매우 충실하게 구사하고 있다. 1권은 흡사 중학교 수학교과서 기하학 파트를 보는 듯하다. '점은 면적 없이 위치만 나타내는 기호' '선은 길이로만 분할할 수 있으며 폭으로는 분할할 수 없는 것' '원은 한 점에서 같은 길이에 있는 점들의 집합' 등과 같은,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수학 선생님과의 잔인한 악몽과 함께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개념들이 1권에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해설해주고 이것을 바탕으로 원근법의 원리를 설명하며, 색과 빛은 어떤 원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의 눈은 어떻게 시각이미지를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광학 이론도 소개한다. 이렇게 1권은 화가가 알아야 할 기초적인 이론에 대한 것이다.

크레실라스의 페리클레스 두상조각. 알베르티는 페리클레스의 머리 모양이 위 아래로 너무 길어서 조각가인 크레실라스가 투구를 씌우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이야기한다.

2권은 회화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선, 면, 색에 대한 소개와 이것들을 토대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 것인가 알려준다. 여기에 그림을 그릴 때 화면의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물들은 어떻게 배치할 것이며,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와 같은 실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심지어 표현하려는 대상의 머리가 너무 크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한 사례(크레실라스의 '페리클레스의 두상조각')를 소개하기도 하면서 사례가 중심이 된 진정한 실용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이렇게 2권은 실제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3권으로 넘어오면 이제 품격 있는 자기계발의 시간이다. 화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품행을 단정히 하고, 7과목으로 구성된 자유학예(Liberal Arts :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에 매진하되 특히 기하학에는 특별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인과 같은 교양인들에게 끊임없이 배움을 청하고,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며,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하라는 충고로 마무리를 짓는다. 3권에서는 훌륭한 화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조감이다.

화가를 위해 참 잘 쓰인 자기계발서인 이 책. 하지만 우리는 미술사가 궁금한 것이지 화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면 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이 책을 미술사에서는 아직 읽고 있는 것일까? 이제 무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 책의 의미를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지난번 빈켈만 때에도 말했듯 꿈보다는 해몽이므로, 아무런 부담 없이, 전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맘대로 그 이유를 지금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화가는 단순 기능인이 아니라 인문적 연출가'

알베르티는 책에서 중요한 한 가지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던진다. 바로 연출이다. 1권에서 그는 사물이 눈에 보이는 원리에 대해 차근차근 소개한다. 하지만 화가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기하학을 공부하고 원근법을 이해하고, 색과 빛의 원리를 숙지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화가가 기하학, 원근법, 광학을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리고자 하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정말 눈앞에 실제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연출을 위한 기본기를 탄탄하게 익히라는 얘기다.

2권에서도 핵심 주제는 연출이다. 알베르티는 역사화, 즉 성서 속 이야기나 신화에 등장하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최고의 것으로 친다. 그래서 자연의 풍광을 그렸거나(풍경화), 사물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그린 그림(정물화)은 진짜 그림이 아니라 오직 역사화만이 진짜 회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역사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스토리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것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잘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토리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정말 그럴 듯하게 상상할 수 있어야 연출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베르티는 화면 구성을 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연출할 수 있으며,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인물들의 표정과 그림의 주제가 일치해야 하는지, 한 화면에 몇 명의 인물이 배치될 때 적절한지, 어떤 식으로 색을 써야 그림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그림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다. 알베르티는 옷주름을 통해 우아함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그림에 바람이 부는 장면을 넣어 옷주름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른바 연출의 디테일까지도 해설한다.

라파엘로 작 '대공의 성모'(1506년)

3권에서는 연출가로서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화가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비슷하게 옮겨 그리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다. 화가는 자유민들의 교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학예를 익혀야 한다. 자유학예는 원래 그리스 로마에서 노동을 하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들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교양을 일컫는 용어였다. 즉 화가는 단순 기능만 보유한 노동자가 아니라 교양을 갖춘 자유민일 것을 요구한 것이다. 또한 학식이 높은 지식인들과 교류를 많이 해, 그들에게서 지성을 얻어낼 것을 주문한다. 물론 테크닉 연마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훌륭한 연출을 위한 다양한 기법을 찾아내는 것에도 매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몸과 머리와 마음이 하나가 된 전인적인 연출가가 되는 것이다.

그럼 기능인이 연출가가 되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기에 알베르티는 화가들에게 이렇게 강조에 강조를 거듭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성급한 비전공자가 찾은 답은, 기능인이 연출가가 되면 스타로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타 화가의 탄생

앞서 말했듯 서양미술사를 뒤적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화가라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순간이 생기는데 이때가 바로 르네상스 시기다. 그전까지는 성서에 나오는 어떤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는 정보 이외에는 누가 그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물론 워낙 오래전 일이니 기록이 안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차이로 수십, 수백 명의 화가 이름이 천재라 칭송되며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기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전에는 누가 그리든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화가의 이름을 굳이 알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어떤 크기로, 어떤 옷을 입혀, 어떤 자세로 그려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면, 그래서 그리는 사람들이 그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면 누가 그리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데 상황이 달라진다. 화가의 개성이라는 것이 그림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즉 화가가 자기 그림에, 자기가 아는 기법들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담아 연출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 같은 주제를 그려도 모두 다른 그림이 된다. 라파엘로도 보티첼리도 다빈치도,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거의 대부분 성모상을 그렸지만 그들의 그림은 모두 개성이 넘치고 느낌이 다르다. 이제는 무엇을 그리느냐에 못지않게 누가 그리느냐가 중요해졌고, 그 누구는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회화는 다른 예술매체들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매체였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회화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단순 기능인이 아닌 인문적 연출가로서의 능력을 가진 화가는 대중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고 사랑받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스타로 분류되는 화가들의 몸값은 지금의 연예인들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런 스타가 되기 위해 수많은 지망생들이 스타의 공방에 모여들어 연습생 생활을 했다(라파엘로의 공방에는 5~60명의 도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알베르티는 진정한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차분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인문주의와 스타 시스템

어떻게 보면 15세기 이탈리아 아이돌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은 르네상스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 알베르티가 살던 시기 이전에는 화가는 단순한 기능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기능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에게 기능 이외의 것은 손댈 수 없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를 그릴 때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이 신의 이름으로 정해져서 감히 깰 수 없다면 아무리 원근법을 알고, 기하학을 알아도 그 규범대로만 그려야 할 것이다. 사람은 없고, 규범만 있으니 당연히 스타도 없다. 하지만 르네상스 미술은 그 규범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교과서에 적힌대로만 성실하게(?) 르네상스를 이해하자면, '인간을 재발견하고 인문정신을 구현하고...'라는 멘트와 옆에 자리한 누드화 하나를 보고 '아 인간을 저렇게 재발견한 게 르네상스인가?'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를 놓고, 어쨌건 그와 유사한 그림들(?)이 많으니 여전히 인간의 재발견을 꿈꾸는 르네상스적 작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을 재발견했다는 것은 알베르티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에게 규범을 넘어선 연출의 여지, 즉 개성을 허용하게 되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감동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닐까?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르네상스 미술이 어떤 덕목을 요구했는가를 엿보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는 사람이 미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어떻게 자신의 개성을 공개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공개하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지 않을까라고 대략 근거 없이 추측해본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글 | 학술팀 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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