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요기와 뒷이야기의 르네상스가 아닌 
생각과 글로 읽는 개념의 미술사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신준형 교수가 20여 년간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하며 길어낸 결과물을 세 권의 책으로 묶었다. 3권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는 2004년 『파노프스키와 뒤러―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그해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2권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 역시 『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라는 제목으로 2007년 출간되어, 2008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었다. 이는 한 저자가 같은 공부 길에 쓴 두 권의 책이 모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기록이었다. 기존의 저작들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개정작업과 더불어, 2013년 새로 집필한 1권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을 더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연구해온 긴 여정을 일단락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북유럽 르네상스와 바로크에 오랜 시간 천착한 그의 글은,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자기 성찰로 시작해,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는 무엇인가라는 깊은 고민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장편 미술사’의 탄생,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3부작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저자가 위스콘신에서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던 1998년 봄과 여름에 시작되어 2013년 봄에 완결된다. 학부생 시절부터 어림잡아 20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초판이 출간된 순서는 지금의 시리즈 순서와는 정반대인데, 가장 먼저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파노프스키와 뒤러―르네상스 미술과 유럽중심주의』라는 제목으로 2004년 출간)가 나왔고, 뒤를 이어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천상의 미술과 지상의 투쟁―가톨릭개혁의 시각문화』라는 제목으로 2007년 출간)이 나왔으며, 지난해 신간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이 나왔다. 


1권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은 문화의 주변부와 중심부라는 관점으로 재해석한 르네상스 미술사다. 완벽한 르네상스인이 되려고 했던 ‘주변’의 뒤러와 르네상스를 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중심’의 미켈란젤로. 동시대의 두 위대한 미술가를 통해 북유럽과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2권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은 종교투쟁이라는 사건을 통해 본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사다. 종교개혁은 천 년 넘게 서구의 보편(Catholic)으로 군림해온 한 종교의 체질을 바꾼 사건이다. 이때 신교와 구교는 미술을 부정하거나 옹호하는 행위를 통해 정치적 이념을 강력하게 선전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은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과 예술의 이상이 가장 교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3권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는 하나의 해석이 어떻게 보편 지식으로 올라서는지 추적한다. 20세기 초 독일 출신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같은 독일 태생 화가 뒤러를 통해 르네상스 미술사를 정립해나간다. 그의 도상 연구 ‘아이코놀로지’는 르네상스 미술사를 읽는 모범답안이 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르네상스를 서구 이성의 승리로 보는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관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 전체를 통과하며 무르익어 간다. 나아가 한 권의 책은 그 안에 또 다른 책의 문제의식을 싹틔우고 있다. 우리는 따로 떨어진 세 권의 책을 읽을 뿐이지만, 전문 연구자의 길을 간 한 사람의 20년 세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셈이다. 문학에서 근대적 의미의 소설, 즉 장편소설은 그 안에 ‘시간’이 흐르는지를 두고 판단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변화를 담아내는 것이 장편소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장편 미술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종종 인용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처럼, 세 권의 책을 거쳐 우리가 다다르는 곳은 신준형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르네상스 시기 미술에 대한 총체적 이해다. 

3부작을 잇는 시작과 끝, ‘주변’이라는 인식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는 르네상스 미술에 대한 종합안내서가 아니다. 세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서 르네상스 미술의 A부터 Z까지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리즈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다. 다른 누구의 미술사가 아니라, 신준형이 쓴 미술사, 그가 가진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르네상스 미술사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떤 미술사인가? 
미술사가 주변적인 학문이라면, 한국에서 서양 미술사는 더더욱이나 주변적이다. 미국에서 유학을 했지만 한국에 돌아와 르네상스 미술 연구자로 살아가는 저자 또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업으로 하며 산다는 것. 그게 바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이자, 책의 출발점이다. “제가 처음에 서양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 다른 인문학을 하는 분들이 저에게 해준 말씀이 ‘한국 사람이 서양 것을 하면 일생 전달자 노릇밖에 못 한다’는 것이었어요. 서양에서 이러저러한 것을 연구하고 있다고 전달해주는 것. 예전에는 그 정도라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요.”(부록 「저자와의 대화」, 57쪽) 
어찌 보면 3부작이 ‘뒤러’로 시작해서 ‘뒤러’로 끝나는 것은 딱 맞는 귀결이다. 뒤러는 서양 고전문화의 중심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 독일 출신의 화가이기 때문이다. 뒤러는 자기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중심에 들어가겠다는 자의식으로 불타오르는 인물이었다. 그가 베네치아 여행 중에 그린 《장미 화관의 축제》(1506)를 보면, 독일에서 유래한 묵주기도라는 주제라든지, 당시 독일 땅의 황제나 가신들 얼굴을 곳곳에 집어넣는 등 독일성이 한껏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주제의 그림을 베네치아적인 화려한 원색으로 그려낸 점은, 베네치아 그림보다 더 베네치아적인 그림으로 본때를 보여주리라는 강박을 반영한다. 책에서는 독일 유대계 출신으로 2차 대전 때 미국으로 망명한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가 뒤러를 연구의 본령으로 삼은 데에도, ‘중심에 필적한 주변’ 뒤러를 자신의 페르소나처럼 여긴 것이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한국어로 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연구대상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하나는 뒤러식 접근, 즉 “서양 언어로 쓰이는 논저들에 필적하는 수준을 지향”하며 “최선을 다해서 한국어로 양질의 연구 저술을 써나가는 것”이다. 또 하나는 “비전공자들이 접근하기 쉽게 소개하고 가르친다는 자세로 저술이 임하는 것”이다. 저자가 앞에 썼던 두 권의 책, 지금의 『파노프스키와 뒤러―해석이란 무엇인가』와 『루터와 미켈란젤로―종교개혁과 가톨릭개혁』은 첫 번째 방식을 염두에 둔 것들이다. 

이후 자신의 미술사 쓰기에 대해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가진 뒤, 가장 나중에 쓴 『뒤러와 미켈란젤로―주변과 중심』에서는 앞의 두 방식이 아닌 제3의 방식을 시도했다. 중심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인 채로 쓰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 학자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하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을 써보리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뒤러와 미켈란젤로를 주변과 중심에 배치하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계에 부딪친다. “그런데 서양 학자들은 물어보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별로 대단치 않은 아마추어적인 질문일 수도 있죠. 예를 들면, 제가 뒤러와 미켈란젤로를 주변과 중심의 시각에서 본 것도 서양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이야기죠.”(부록 「저자와의 대화」, 57쪽) 
3부작을 마무리한 시점에 새롭게 찾은 길은 교류사다. 그는 “서양 학자들은 동양을 몰라서, 동양 전공하는 사람들은 서양을 몰라서 못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했다. 몇 해 전부터 그리스도교 미술의 동아시아 전파, 미술에서 일어난 혼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포르투갈어를 새로 배웠고, 오래전에 익힌 일본어를 다시 들춰보았다. 이 공부가 또 어떤 길로 접어들지 알 수는 없지만, 신준형의 공부는 한국에서 서양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연구에서 종종 소외되는 ‘나’, 즉 연구 주체를 되살려낸 점에서 그렇다. 
자기 문제의식. 그것은 자기 한계이기도 하지만, 모든 출발은 거기에서 이루어진다. 학문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거창하다면 거짓말일 확률이 높다. 훌륭한 학자들은 일생 자기를 떠나지 않는 문제의식 하나를 붙들고 씨름한다. 자기 한계를 확인하고 자기를 부정하는 공부는 매번 고통스러운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흔히 볼 수 없다. 수상한 인문학 열풍이 부는 지금,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가 우리에게 귀한 이유다.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세트

저자
신준형 지음
출판사
사회평론 | 2014-04-10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눈요기와 뒷이야기의 르네상스가 아닌 생각과 글로 읽는 개념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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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닥치는 대로 걸리는 대로 미술사(닥걸미)'의 이번 차례는 <알베르티의 회화론>(노성두 옮김, 사계절 펴냄)이다. 역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남의 회사 책이다. 다만 그 지위가 절판도서로 도서관에서만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에 자사 블로그에 독후감을 올리는 행위에 대한 부담이 다소간 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편 본좌의 이야기가 서양미술사 일변도에 타사 도서 중심이었던 점을 반성하며, 다음에는 자사에서 출판한 한국미술사 책, 안휘준 교수의 <안견과 몽유도원도>로 가 볼 것이다. 어쨌건 다음은 다음이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니, 이번에도 본 글에 오류가 있다 해도 특별히 책임을 지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섣불리 인용하지 말기를 권하는 바이다.

외울 게 많은 르네상스

역사라면 어떤 종류의 역사건, 뭔가가 엄청나게 몰리는, 그래서 시험범위에 들면 외워야 할 것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특정한 시대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1945년을 중심으로 한 앞뒤의 몇 년은 한국현대사에서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사이로 나라가 만들어졌다가 두 쪽 나기도 하고, 삼국지 마냥 수많은 영웅들이 무더기로 등장해 화려한 초식을 선보이며 스펙타클한 드라마를 써내려간다. 그래서 1945년 전후는 한국현대사에서 뭔가가 몰리는 시대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것처럼 이렇게 역사에서는 영웅과 천재, 엄청난 발명과 사건들은 대개 비슷한 순간에 빵 터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미술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그런 순간을 서양미술사에서 찾는다면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이탈리아도 그 한 장면일 것이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는 세기의 천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르네상스 초입의 이탈리아 출신 ○○○이었다. 여기서 ○○○이라고 쓴 이유는 그를 무언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볼로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것을 비롯해, 수학, 수사학, 시학 등을 공부했으며 회화와 건축에서 창작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운동경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부르넬레스키, 도나텔로, 마사치오 등 당대의 A급 예술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고, 책도 여러 권 남겼는데 고대 로마의 건축 유적을 조사하고 쓴 <로마 서술>, 건축에 대한 이론을 쓴 <건축론>, 조각에 대한 <조각론>, 그리고 회화에 대한 이론을 쓴 <회화론>이 있다.

화가들을 위한 본격 자기계발 실용서, 알베르티의 <회화론>

알레르티 상(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알베르티가 1435년에 라틴어 본을 저술하고 1436년 이탈리아어 본을 직접 번역 출판한 <회화론>은 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화가를 위한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이다. 총 3권으로 이루어진 <회화론>의 1권은 '화가가 알아야 할 원근법과 수학(기하학), 광학'에 대한 내용이며, 2권은 '회화의 구성요소', 3권은 '화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설명이다. 이론, 실기, 마음가짐까지 깔끔하게 구성된 시리즈의 순서는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로서 손색이 없다.

게다가 그는 아주 쿨하게 화가가 되지 않을 사람은 자신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 괜한 고생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 책은 화가를 위한 책이지 수학자, 철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므로 책을 읽는 독자들(화가가 될 사람들)은 여기에 나온 이론 정도만 알면 되고 그 이상은 몰라도 된다고 말한다. 시험 전날 족집게 선생님에게 엄한 것 물어봤다가 듣게 되는 '그거 시험에 안 나온다'는 쿨한 멘트의 전통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론, 실기, 품성...르네상스 화가가 되기 위한 3단계

어찌되었건 이 책은 저자의 의도를 매우 충실하게 구사하고 있다. 1권은 흡사 중학교 수학교과서 기하학 파트를 보는 듯하다. '점은 면적 없이 위치만 나타내는 기호' '선은 길이로만 분할할 수 있으며 폭으로는 분할할 수 없는 것' '원은 한 점에서 같은 길이에 있는 점들의 집합' 등과 같은,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수학 선생님과의 잔인한 악몽과 함께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개념들이 1권에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해설해주고 이것을 바탕으로 원근법의 원리를 설명하며, 색과 빛은 어떤 원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의 눈은 어떻게 시각이미지를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광학 이론도 소개한다. 이렇게 1권은 화가가 알아야 할 기초적인 이론에 대한 것이다.

크레실라스의 페리클레스 두상조각. 알베르티는 페리클레스의 머리 모양이 위 아래로 너무 길어서 조각가인 크레실라스가 투구를 씌우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이야기한다.

2권은 회화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선, 면, 색에 대한 소개와 이것들을 토대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 것인가 알려준다. 여기에 그림을 그릴 때 화면의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물들은 어떻게 배치할 것이며,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와 같은 실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심지어 표현하려는 대상의 머리가 너무 크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한 사례(크레실라스의 '페리클레스의 두상조각')를 소개하기도 하면서 사례가 중심이 된 진정한 실용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이렇게 2권은 실제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3권으로 넘어오면 이제 품격 있는 자기계발의 시간이다. 화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품행을 단정히 하고, 7과목으로 구성된 자유학예(Liberal Arts :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에 매진하되 특히 기하학에는 특별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인과 같은 교양인들에게 끊임없이 배움을 청하고,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며,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하라는 충고로 마무리를 짓는다. 3권에서는 훌륭한 화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조감이다.

화가를 위해 참 잘 쓰인 자기계발서인 이 책. 하지만 우리는 미술사가 궁금한 것이지 화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면 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이 책을 미술사에서는 아직 읽고 있는 것일까? 이제 무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 책의 의미를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지난번 빈켈만 때에도 말했듯 꿈보다는 해몽이므로, 아무런 부담 없이, 전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맘대로 그 이유를 지금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화가는 단순 기능인이 아니라 인문적 연출가'

알베르티는 책에서 중요한 한 가지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던진다. 바로 연출이다. 1권에서 그는 사물이 눈에 보이는 원리에 대해 차근차근 소개한다. 하지만 화가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기하학을 공부하고 원근법을 이해하고, 색과 빛의 원리를 숙지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화가가 기하학, 원근법, 광학을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리고자 하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정말 눈앞에 실제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연출을 위한 기본기를 탄탄하게 익히라는 얘기다.

2권에서도 핵심 주제는 연출이다. 알베르티는 역사화, 즉 성서 속 이야기나 신화에 등장하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최고의 것으로 친다. 그래서 자연의 풍광을 그렸거나(풍경화), 사물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그린 그림(정물화)은 진짜 그림이 아니라 오직 역사화만이 진짜 회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역사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스토리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것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잘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토리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정말 그럴 듯하게 상상할 수 있어야 연출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베르티는 화면 구성을 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연출할 수 있으며,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인물들의 표정과 그림의 주제가 일치해야 하는지, 한 화면에 몇 명의 인물이 배치될 때 적절한지, 어떤 식으로 색을 써야 그림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그림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다. 알베르티는 옷주름을 통해 우아함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그림에 바람이 부는 장면을 넣어 옷주름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른바 연출의 디테일까지도 해설한다.

라파엘로 작 '대공의 성모'(1506년)

3권에서는 연출가로서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화가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비슷하게 옮겨 그리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다. 화가는 자유민들의 교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학예를 익혀야 한다. 자유학예는 원래 그리스 로마에서 노동을 하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들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교양을 일컫는 용어였다. 즉 화가는 단순 기능만 보유한 노동자가 아니라 교양을 갖춘 자유민일 것을 요구한 것이다. 또한 학식이 높은 지식인들과 교류를 많이 해, 그들에게서 지성을 얻어낼 것을 주문한다. 물론 테크닉 연마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훌륭한 연출을 위한 다양한 기법을 찾아내는 것에도 매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몸과 머리와 마음이 하나가 된 전인적인 연출가가 되는 것이다.

그럼 기능인이 연출가가 되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기에 알베르티는 화가들에게 이렇게 강조에 강조를 거듭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성급한 비전공자가 찾은 답은, 기능인이 연출가가 되면 스타로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타 화가의 탄생

앞서 말했듯 서양미술사를 뒤적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화가라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순간이 생기는데 이때가 바로 르네상스 시기다. 그전까지는 성서에 나오는 어떤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는 정보 이외에는 누가 그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물론 워낙 오래전 일이니 기록이 안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차이로 수십, 수백 명의 화가 이름이 천재라 칭송되며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기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전에는 누가 그리든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화가의 이름을 굳이 알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어떤 크기로, 어떤 옷을 입혀, 어떤 자세로 그려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면, 그래서 그리는 사람들이 그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면 누가 그리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데 상황이 달라진다. 화가의 개성이라는 것이 그림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즉 화가가 자기 그림에, 자기가 아는 기법들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담아 연출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 같은 주제를 그려도 모두 다른 그림이 된다. 라파엘로도 보티첼리도 다빈치도,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거의 대부분 성모상을 그렸지만 그들의 그림은 모두 개성이 넘치고 느낌이 다르다. 이제는 무엇을 그리느냐에 못지않게 누가 그리느냐가 중요해졌고, 그 누구는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회화는 다른 예술매체들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매체였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회화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단순 기능인이 아닌 인문적 연출가로서의 능력을 가진 화가는 대중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고 사랑받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스타로 분류되는 화가들의 몸값은 지금의 연예인들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런 스타가 되기 위해 수많은 지망생들이 스타의 공방에 모여들어 연습생 생활을 했다(라파엘로의 공방에는 5~60명의 도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알베르티는 진정한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차분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인문주의와 스타 시스템

어떻게 보면 15세기 이탈리아 아이돌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은 르네상스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 알베르티가 살던 시기 이전에는 화가는 단순한 기능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기능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에게 기능 이외의 것은 손댈 수 없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를 그릴 때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이 신의 이름으로 정해져서 감히 깰 수 없다면 아무리 원근법을 알고, 기하학을 알아도 그 규범대로만 그려야 할 것이다. 사람은 없고, 규범만 있으니 당연히 스타도 없다. 하지만 르네상스 미술은 그 규범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교과서에 적힌대로만 성실하게(?) 르네상스를 이해하자면, '인간을 재발견하고 인문정신을 구현하고...'라는 멘트와 옆에 자리한 누드화 하나를 보고 '아 인간을 저렇게 재발견한 게 르네상스인가?'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를 놓고, 어쨌건 그와 유사한 그림들(?)이 많으니 여전히 인간의 재발견을 꿈꾸는 르네상스적 작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을 재발견했다는 것은 알베르티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에게 규범을 넘어선 연출의 여지, 즉 개성을 허용하게 되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감동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닐까?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르네상스 미술이 어떤 덕목을 요구했는가를 엿보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는 사람이 미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어떻게 자신의 개성을 공개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공개하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지 않을까라고 대략 근거 없이 추측해본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글 | 학술팀 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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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좌의 학부 전공은 법학과. 허나 입학 당시부터 남의 송사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여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대학시절을 보내고 졸업이 임박하자 일단 출판사에 이력서 넣기를 감행한다. 다행스럽게도 입사 지원자를 다면평가하지 못했던 당시 인사담당자들의 실수로 인하여 취직에는 성공하였으나 행운은 여기까지(참고로 현재는 입사지원절차가 매우 복잡해졌다. 본좌가 자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라고 자부하고 있다). 출근 후 배치를 받은 곳이 바로 학술팀 미술사 편집부였던 것이다. 대학시절 2학점짜리 서양미술사 교양 하나 듣고, 군대시절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한 번 읽은 게 전부였던 상황에서 미술사 책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법대 출신 편집자의 '생계형 미술사 탐방기'

그로부터 3년... 본좌는 여전히 미술사 책을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있으니 남몰래 흘려야 했던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고, 오늘도 매 순간 사고를 치며 가슴 한켠을 움켜잡아야 하는 본좌의 심정을 독자분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생계가 걸린 문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라도 '미술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듬어야 했다. 그렇게 더듬더듬 하다가 잡히는 대로 읽고, 걸리는 대로 보는 야인과 같은 미술사 탐방기를 가끔 남기려 하니 오늘이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다만 본좌가 대학시절 학문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체계적 독서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또한 유치원생도 영어로 쎄쎄쎄를 하는 작금의 현실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오로지 한글 읽기 기능만 유지하자는 독립군적 마음가짐으로 인하여 세련되게 외국어 원서를 읽는 등의 우아한 독서 역시 불가능하다는 점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물론 그러하기에 대다수의 한글 전용 미술사 독자들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동질감과 자부심을 가슴에 아로새기고 첫 발을 내딛는다.

오늘 소개하려는 것은 책이다. 서양미술사 관련 논문집을 편집하다 어느 참고문헌에선가 발견한 한글화된 몇 안 되는 미술사 고전이다. 다만 타사의 도서를 자사의 블로그에 소개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하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본좌의 생사여탈권을 지니고 있는 CEO가 그저 이 글을 못보고 지나가기만을 우리 다 같이 기도해보기로 하자. 게다가 이 독후감은 미술사와 관련해 어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본좌의 이야기라 도처에 구멍이 많다는 점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저 너무 많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다.

* 참고로 본좌의 글에 오류가 있다 해도 특별히 책임을 지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섣불리 인용하지 말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리스 미술 모방론 | 요한 요하힘 빈켈만 지음 | 민주식 옮김 | 이론과 실천 펴냄 | 263쪽


최고의 미남, 미녀를 뽑아라

외모만을 놓고 보았을 때 미남, 미녀가 최고로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지상낙원일 것만 같은 그곳은 바로 그리스라고 한다. 그럼 왜 유독 그리스에는 미남, 미녀가 많은 걸까? 이유는 대략 허무하다. 그리스에 미남, 미녀가 많은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 사람들이 예쁘고 잘생겼다고 배웠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움의 기준을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리스 조각상이라고 배운다. 그런데 그리스 조각상은 당연히 그리스 사람을 보고 만들었을 것이고 그러하니 그리스 사람이 잘생기고 예뻐 보인다는 얘기. 
 
물론 이런 이야기는 근거 없이 제시할 경우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반대로 힘을 빼고 얘기하면 믿거나 말거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술자리 토크 소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사실이라면, 아름다움과 미의 기준이 학습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되는 것이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의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에서 아리아인의 우월한 혈통을 설계한 히틀러의 인종 청소도 결국 파고 들어가다 보면 앞서 이야기한 지점에서 비슷하게 만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예쁜, 즉 우월한 인종이 지구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의 시작이 그곳에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스 미술, 지존으로 등극하다

어쨌든 빈켈만의 <그리스 미술 모방론>은 그리스 미술이 서양미술, 더 나아가 온 인류의 역사에서 최고로 칭송받아야 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 있는 책이다. 그리스 조각상을 분석해 그 작품들에서 절대 미의 기준을 찾아낸 이야기는 이후 미술사 분야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꽤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괴테도 빈켈만의 작업을 칭송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 덕분에 서양미술사 맨 앞자리는 통상 그리스 미술이 차지하게 되었고, 간혹 이집트나 소아시아 지역의 미술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리스 미술이 완벽해지기 위한 도우미 정도의 역할로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미술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 조각상이 등장하는 것이 다 이 분의 이 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얘기.

하지만 그 정도의 이야기라면 미술사를 탐험하기 위해 굳이 예전에 돌아가신 독일 사람의 이야기를 일독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평범한 이유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있기에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무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 이야기가 가진 의미를 내 맘대로 해석해보기 시작하자. 꿈보다는 해몽이므로, 아무런 부담 없이, 전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맘대로 그 이유를 지금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요한 요하힘 빈켈만

요한 요하힘 빈켈만(1717 – 1768)

요한 요하힘 빈켈만은 독일 사람으로 1755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1755년이면 조선에서는 영조대왕의 치세, 중국은 건륭 치세로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최전성기였다. 한편 유럽에서는 그런 아시아를 어떻게든 따라잡아 보겠다고 프랑스와 영국이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고 있던 때이다. 하지만 독일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유럽에서 국제분쟁이 터졌다 하면 결투는 늘 독일 땅에서였다. 그런 비운의 독일 땅에서 통일된 민족국가가 싹을 보이기 시작하려면 아직도 100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산업혁명이다 시민혁명이다 유럽이 들썩거릴 때도 독일은 봉건 장원이 굴러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별 볼 일 없는 제후국들의 모임이었다. 한마디로 빈켈만은 썩 잘 나가는 동네 사람은 아니었다. 

한편 책을 낼 수 있었던 배경도 당황스럽다. 저자가 주로 분석한 미술작품들은 그리스 조각상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진품이 아니었다. 그리스 조각 작품들 가운데 로마시대에 이미테이션으로 복제되었던 것들이 로마제국 멸망 후 폐허 속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골동품 취향이 있던 몇몇 귀족 가문에서 그 작품들을 실내 인테리어 장식용으로 도굴에 가깝게 파냈다. 그리고 자기네 집 장식장에 슬쩍 가져다 놓았던 것이 바로 빈켈만이 분석한 주요 작품들이었다.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동네에서, 남의 집 인테리어 장식품을 보고 쓴 글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오늘 이 자리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일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미술사가 만드는 근대

빈켈만은 그리스 미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스 미의식에 극도의 찬사를 보내며 경외심을 표명한다. 그리스 미술이 '고요하지만 장엄한' 미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조각상과 회화 작품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길 인류 최고의 미의식은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을 당대에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웅변한다.

코나도스의 아프로디테(로마 바티칸 미술관)

사실 내용상 특별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분석이나 톡 쏘는 이야기, 무릎을 치게 만드는 탁견 같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그리스 미술의 우월성을 강조하다 보니 손발이 오글오글해지는 무안한 부분이 적지 않으며, 분석이라는 것이 뚜렷한 근거에 기준했다기보다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저자의 분석틀에 기초하다보니 주관적 감동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이 양반의 이야기가 서양미술사, 미학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 그런지 예술작품 해설도 그리 낯설지 않고, 그렇다고 분석하는 작품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심지어 심심한 느낌도 있다.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글이 지금 의미를 갖는 것일까? 혹 이 책에 미술사를 통해, 근대라는 유럽의 족보가 만들어졌던 흔적이 남아 있어서는 아닐까?
 
먹고살 만해지면 족보부터 찾는다

유럽은 아주 오랜 기간 변방에 머물렀다. 아주 최근까지도 인간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재화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으며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 역시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유럽이 전 지구적으로 주목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 년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을 뿐이다. 유럽은 늘 변두리였다.
 
그런데 200년 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기계를 만들고,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 물건을 찍어내고 자본주의적 시장을 만든다. 유럽이 잘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뭔가 서서히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무렵 유럽은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기계를 만들고,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 물건을 찍어내기 시작해 장사도 하고 돈도 차곡차곡 모아는 가고 있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온다. 먹고 살만해지면 족보부터 사려는 것이 인지상정. 유럽의 엄청난 상승세를 하나로 정리해 줄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유럽이 가고 있었던 길을 하나로 정리해 줄 수 있는 '근대'라는 개념 말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닌 터라 모델로 삼을 뭔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바로 그리스와 로마이며 특히 그리스였다. 사실 지리적으로 보자면 그리스는 아시아에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심지어 당시만 해도 이슬람 세력인 투르크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모델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펼쳐졌던 정치형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가공되어 근대 정치의 개념적 뿌리가 되었다. 이미 일정 정도의 양성평등을 이룩했고, 실질적인 의미의 노예제가 사라졌던 페르시아와 달리, 여자를 애 낳는 기계 정도로 생각하고 노예는 말하는 노동 기계 정도로 생각했던 그리스의 정치형태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 서구 유럽식 정치체제의 사상적 근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혁명이라는 그럴 듯한 모양새를 통해 탄생한 서구사회의 민주정치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노예제가 사라진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구의 민주주의라는 것과 그리스의 정치체제는 참으로 교묘하게 겹친다).

이렇게 그리스와 로마는 새롭게 성장하는 서구의 정신적,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는 근대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빈켈만 역시 미술사에서 그리스를 찾아낸다. 그도 그리스를 통한 근대의 개념을 만드는 유럽의 초창기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사로 만드는 근대인 것이다.

미술사로 정리한 근대적 사고방식

한편 빈켈만은 그리스 미술에서 '고요함 속의 장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진짜 고요함 속에 장엄함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류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라는 개념을 따로 분리해서 사고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이 미술사에서도 정리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빈켈만은 전적으로 '미'라는 개념을 분리해서 이야기한다. 미는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숭고하고 정신적인 불변의 그 어떤 것이며 그것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기준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스 미술에서 찾은 것이다. 어쨌건 빈켈만은 미라는 것을 독자적인 무엇으로 분리시킨다.

독일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빈켈만박물관

그런데 근대라는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에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표현하는 '화가'라는 직업이 있었을까? 미켈란젤로는 건축가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자이자 요리사였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화가가 아니라 국가기록물을 기록하는 기자였으며 불상을 조각하는 사람은 조각가가 아니라 일체대중을 구제하고자 하는 스님, 즉 종교인이었다. 그런데 빈켈만의 그리스 미술 모방론이 등장하면서 건축가, 과학자, 기자, 종교인으로부터 화가가 분리될 수 있었다. 교회에 오는 신자들이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각적 감동을 유발시키기 위해 보기 좋게 장식을 하고, 공동체의 대소사를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성원들을 위해 시각적 기록으로 남기는 하나의 도구였던 미술이 그 어떤 가치도 개입될 수 없는 순수한 어떤 것이 되었다.
 
빈켈만이 미술사에서 이런 작업을 진행했다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 이전에 학문의 분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라는 개념과 함께 학문은 급속하게 분리된다. 이것은 '미'가 빈켈만 식으로 분리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따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따로 분리시킬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모두 연관되어 있는데, 수요와 공급 문제 하나만 딱 분리해서 분석하면 뭔가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분리할 것인가 정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분리한다고 해도 세상 모든 것이 다 함께 엮여서 돌아가는 것이 이치인데 그걸 분리한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근대적 사고방식은 순수한 경제학을 탄생시켜 이 복잡한 세상의 먹고사는 문제를 그래프 2개로 정리해버리며 그것을 신봉하기 시작한다. 빈켈만이 '고요한 장엄'을 정립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도 그렇게 정립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빈켈만의 작업은 미술사를 통해 근대라는 개념을 정립시켰던 꽤 유력한 작업은 아니었을까? 이제 다음 책은 시간을 거슬러 르네상스 시대로 올라간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으로 가볼 것이다. 물론 언제 갈 수 있을지는 기다려봐야 할 문제이지만 말이다.

글 | 학술팀 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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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6/24)자로 이곳 블로그에 두 개의 방이 새로 열립니다.
입주자는 학술팀의 '다돌'님과 '명륜동 전지현'(아, 이런 닉네임을 쓰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님.
각각 '미술샤방'과 '考古閑談'이란 문패를 내걸고 '미술사'와 '고고학'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을 계획입니다.

그동안 이곳이 살짝 썰렁했는데, 이제 좀더 풍성해지겠죠?
아래 두 방장의 초간단 출사표를 올립니다.

이제 막 도배를 끝낸 상태라 그럴 듯한 방으로 꾸며지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겁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미술샤방'의 방장 '다돌'

"저는 미술샤방의 방장을 수행하게 된 다돌이라고 합니다. 바야흐로 인문학이 대세인 시대, 그 인문학 가운데서도 꽃이라 불리는 '미술사'. 사회평론 출판사가 미술사 분야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 볼랍니다. 여러분의 애정 어린 댓글과 무한 트랙백의 감동을 기다리겠습니다."

'考古閑談'의 방장 '명륜동 전지현'

"고고학, 뱉어놓고 보니 어렵게 느껴지네요.
고고학에 문외한이기에 할 수 있는
한가로운 이야기들을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뭐, 사실 흥미로운 건 주변의 이야기들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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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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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기간입니다. 텔레비전을 틀어도 거리를 다녀도 모두 붉은 색입니다. 모두들 지난 밤의 축구 경기 결과로 이야기 꽃을 피우죠. 뜨거운 월드컵 열기 와중에 저희 출판사에서는 조용히(?) 한국미술에 관한 신간 한 권이 나왔습니다.

 (짜앙~ 바로 이 책이어요)

이름하야...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이 책의 저자는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입니다. 
근데 왜 '청출어람'이냐고요? 그것은 누구나 다 알 것은 같은 한국미술은 대체 어떤 미술일까? 그 개념을 확실하게 정리하기 위함입니다. 이 책에서는 한국미술에 많은 영향을 준 중국미술을 뛰어넘어 독보적인 경지에 이른 한국미술을 '청출어람'이라고 규정하고 이 경지에 오른 한국미술을 중심으로 한국미술의 특징을 조목조목 짚어줍니다.

음...
먼저 안휘준 교수에 대해서 간략하게 부연 설명드리자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술사학자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아마도 학계를 제외하곤 그간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아 "그런가?"하고 의문 부호를 던질 수 있겠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나 최근 출간된 <옛 화가들은 우리 땅을 어떻게 그렸나>의 저자 이태호 교수 등을 가르치신 선생님이랍니다. 

 (바로 이 분이 안휘준 교수님입니다. 앙~다문 입매가 무서우신가요? ㅎㅎ)

근데 단지 유명인의 스승이라서 대단하시냐고요? 그건 결코 아닙니다. 유홍준 교수나 이태호 교수 등과 같이 현재 활발히 활동하는 미술사학자들 대부분이 안휘준 교수가 그동안 닦아 놓은 한국미술사를 위한 기초 위에서 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해방과 한국전쟁 후에 폐허만 남은 우리 미술사, 먹고 사는 데 급급해 "그림이 뭐간디, 밥 한술 먹어주냐" 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쭉 '문화는 미래의 쌀'이라고 생각했던 분 중 한 분이랍니다. 다행히 1990년대 이후 우리가 우리의 전통과 문화를 바로 알자는 공감을 형성하고 이땅의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알게 된 것도 이처럼 연구실에서 그 기초를 닦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흠... 생각해보니 이 역시 또 하나의 '청출어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군요.

각설하고.  
지난 6월 14일 월요일 저녁 6시 서울 종로구 평창동 화정박물관에서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의 저자 안휘준 교수님의 기자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조선, 중앙, 동아를 비롯 한국일보, 연합뉴스, 문화일보, 서울경제신문 등 일간지와 유니온 프레스, 뉴데일리 등등 인터넷 매체의 기자분들께서 참석해 주셨습니다.

(화정박물관의 주요 관계자 및 실무자, 미술사학계, 각 언론사 기자 등등 약 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각 언론사의 여러 기자들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는 이 책의 모태가 되었던 화정박물관의 '화정미술사강연'의 여러 관계자 분들도 함께하셨습니다. 화정박물관 관장님을 비롯 '화정미술사강연' 기획위원인 서울대 이주형 교수 및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 화정미술사강연에서 강연을 하셨거나 앞으로 하실 4분의 강연자분들도 함께하셨습니다. 게다가 미술사학계에서도 한국미술사학회장 최공호 교수를 비롯 여러 연구자들도 오셨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 중인 안휘준 교수님)

(청출어람의 경지에 오른 우리 미술작품 선정에 대한 질문 중인 기자와 조촐하기 그지 없는 몸매의 00)

기자간담회 중에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님의 질문도 있었는데요, 왜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에서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이 빠지게 되었는지 안휘준 교수님께 물어보셨습니다.

안휘준 교수님은 추사의 경우, 비록 뛰어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예술가임은 틀림없지만 그의 작품을 볼 때 그것이 꼭 중국의 왕희지나 조맹부의 서체보다 뛰어나다고 평가할 수 없는 데다 중국풍이 확연해 한국성이 일부 결여된 점에서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답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청출어람'의 경지에 든 작품들은 모두 한국적 색채가 강하면서도 보편성을 확보한 작품들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랍니다.

                      (기자간담회 후 화정박물관이 마련한 저녁식사 중인 여러 참석자들)

                     (간담회가 끝나고 환담을 나누는 서울대 이주형 교수님과 싸~장님)

                               (행사 후 한자리에 모인 한국미술사학계의 거목들) 

마지막 사진은 저자 안휘준 교수님과 한국미술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로 불리는 여러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입니다. 좌측부터 초상화 분야의 대가 조선미 성균관대 교수, 한국불교조각 분야의 대가 김리나 홍익대 명예교수, 그리고 맨 우측은 우리나라의 중앙아시아 미술사를  개척한 권영필 상지대 석좌교수입니다. 이 분들은 화정박물관의 '화정미술사강연회'의 주요 강연자들이기도 합니다.

그 시각 우리는... 호랑이는 굶어도 풀은 안 뜯어먹듯, 프로들은 밥을 나중에 먹는다는 사회정의를 구현 중이었습니다. T.T

     (밥은 언제라도 먹을 수 있다며 걱정게이지 따위는 낮춰 달라는 강철 같은 의지의 손바닥)

이 날의 기자간담회는 저녁 6시부터 약 2시간 가량 진행되었구요, 안휘준 교수님은 <청출어람의 한국미술>의 서문 낭독을 통해 이 기자간담회를 연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자간담회에서는 왜 한국미술이 청출어람이라고 불리는지, 청출어람으로 선정되지 못한 여러 작품들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설명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사실, 저희는 이번 기자간담회를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었고, 행여나 행사 당일 기자들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내내 좌불안석이었죠. 그러나 다행히도 기자간담회는 큰 문제 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

                   (학술팀 국보자매 00양과 00양 성공적인 간담회를 기원하며...)

글 | 학술팀 밥(米)


관련기사 보기>>
[동아일보] 진경산수화는 'OK', 세한도는 'NO'(이광표 기자)
[중앙일보] "우리 미술문화와 역사 공정한 평가작업 필요"(이경희 기자)
[서울경제] "한국미술, 中 영향 받았으나 더 높은 경지 올라"(조상인 기자)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반양장) - 10점
안휘준 지음/사회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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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류화개 2010.06.17 09:53 신고 / Delete / Reply

    근데 청출어람의 경지를 이룩한 우리 미술품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살짝 보여주시면 좋겠네요^^

    • <청출어람의 한국미술> 책 안내 및 책에 실린 주요 작품에 대한 소개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다른 포스팅을 통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by 사평 at 2010.06.17 10:39 신고 / delete
  2. 추양 2010.06.17 10:24 신고 / Delete / Reply

    앗.....선배님 정말 고생많이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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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학술원(이하 학술원)에서 매년 선정하는 우수학술도서에 올해 사회평론의 책 가운데 2권이 선정되었습니다.^^V 마이크 파커 피어슨이 쓰고 경북대학교 이희준 교수가 옮긴 <죽음의 고고학>(고고학 분야)과 서울대학교 이주형 교수가 책임편집을 맡고 총 8명의 연구자들이 공동집필한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 유적>(미술사 분야)이 바로 그 2권입니다.

우수학술도서란?

학술원(http://www.nas.go.kr)은 우리나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학자들과 학문 연구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고자 1954년에 만들어진 유서 깊은 단체입니다. 각 분야를 대표하는 학자 150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연구지원, 국제학술교류, 학술정책생산 등의 주요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년 우수학술도서를 선정하는 것도 주요사업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수학술도서는 말 그대로 그 해에 출간된 기초학문 분야의 우수한 학술서를 선정하고 각 대학이나 연구소에 보급하는 사업입니다. 즉 역사가 60년을 향해 가는 권위 있는 국립학술단체가 해당 학술서적의 내용을 중심으로 선정하는 셈이죠. 그러다 보니 책을 저술, 번역, 출판하는 데 있어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되어야겠다고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정 여부가 어느 정도는 필자나 역자, 출판사 모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합니다. ^^

아래 올해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죽은 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죽음의 고고학>

죽음의 고고학 | 원제 The Archaeology of Death and Burial | 마이크 파커 피어슨 지음 | 이희준 옮김 | 424쪽 | 2009-10-22 | 값 25,000원


미드 'CSI'를 보면 범죄의 단서를 찾기 위해 시체를 부검하는 장면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늘 결정적인 단서는 시체에서 나오게 마련이죠.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시체는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을 보여주는 이런 장면은 드라마적 허구만 조금 걷어낸다면 거의 대부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책 <죽음의 고고학> 역시 '죽은 이'로부터 시작하는 고고학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무덤이 한 기 발견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화장(火葬)된 사체가 2구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뼈, 머리카락, 피부조직 등이 잔존물과 몇 가지 무기류와 옷가지가 나왔죠. 고고학자들은 이제 이 몇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그 사체의 주인공들이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이 알았던 사실보다 훨씬 더 많은 사실을 알아내기 시작합니다. 발견된 뼈와 조직은 그들이 몇 살까지 살았으며, 남성인지 여성인지,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으며, 어떤 병에 걸려 있었는지, 그들의 계급이 무엇이었으며 어떤 식으로 사망에 이르렀는지 알려줍니다. 몇 가지 부장품을 통해 그들의 의식주 문화를 추적하고 축제 때는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등을 알아내지요. 분석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몇 가지 단서들에서 시작해 고고학자들은 죽은 이들이 살았던 당시의 정치 및 사회체제, 경제와 전쟁, 자연재해와 돌림병, 종교와 세계관까지 알아내기에 이릅니다.

이 책은 죽은 이를 통한 고고학 연구의 이론과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학술서가 갖추어야 할 학술적 엄밀함을 유지하는 것과 동시에, 그 내용이 말해주듯 책의 전개는 한 편의 추리소설이나 영화를 보는 듯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고고학을 잘 생기고 예쁜 도굴꾼들의 이야기(영화 '인디아나 존스'나 '미이라'에 나오듯이)라고 생각하셨던 분들, 혹은 허허벌판에서 깨진 돌조각을 맞추고 있는 심심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셨던 분들은 고고학의 새로운 세계를 만나보실 수 있는 책입니다.

지은이  마이크 파커 피어슨 | 영국 셰필드대학 고고선사학과 교수

장송의례고고학, 문화유산 관리, 사회인류학, 야외 고고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영국, 덴마크, 독일, 그리스 등에서 많은 고고학 발굴에 참여했고 지금은 마다가스카르와 스톤헨지 세계문화유산의 현장 프로젝트를 지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Bronze Age Britain, Architecture and Order: Approaches to Social Space, Earthly Remains: The History and Science of Preserved Bodies(공저) 등이 있다.

옮긴이  이희준 | 경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교수

고고학 이론 및 방법론에 관심을 갖고 한국 고대국가 형성과정을 고고학으로 해명하는 작업과 신라를 고고학으로 연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신라고고학연구>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인류의 선사문화>, <현대 고고학의 이해>, <현대 고고학 강의>, <Discovery!>가 있다.

한국이 전 세계에서 최첨단을 걷고 있는 인문학 분야의 연구 <동아시아 구법승과...> 

동아시아 구법승과 인도의 불교 유적 - 인도로 떠난 순례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 이주형 책임편집 | 양장본 | 585쪽 | 2009-02-28 | 값 40,000원

한국이 1위인 분야가 은근히 많다는 점에 놀랄 때가 있습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세계적인 저널에 우리 학자들의 논문이 게재되는 일이 심심치 않죠. 가장 높은 빌딩을 짓고, 가장 많은 배를 만들고, 가장 빠른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도 한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1위 혹은 첨단을 걷고 있는 분야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등에만 있지 인문학 분야에서는 찾기가 힘듭니다. 여전히 인문학에서는 외국의 유명한 학자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책이 나왔는지에 대해 빠르게 들여다보고 번역하고 그들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아직도 발 빠른 수입업자가 먹힌다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이 책은 다릅니다. 우리가 1등인 책이기 때문입니다.

3세기부터 11세기에 걸쳐 성지를 순례하고 불경의 원전을 찾아서 인도로 떠난 일군의 중국, 한국, 일본 승려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서유기>의 실제 주인공인 현장법사도 있었고 <왕오천축국전>으로 유명한 신라 스님 혜초도 포함되지요. 이들 동아시아 승려들을 구법승이라 부르는 바, 이 책은 이들 구법승의 행로를 복원하고 주요 유적지를 직접 답사해 불교 유적을 실제로 조사, 정리한 책입니다.
 
불교와 불교미술을 연구하는 전문 연구자들이 학제적인 연구팀을 만들고 총 3년에 걸친 연구를 시작합니다. 600여 권이 넘는 기초 문헌들을 정리하고 10여 명에 이르는 조사팀이 평균 한 달의 일정을 소화하는 인도 현지답사를 3번이나 떠났습니다. 이들은 돌아와 다시 자료를 정리하고 집필을 시작해 이 책을 쓰게 됩니다.

앞에 하던 이야기를 다시 이어볼까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연구성과 등은 실제로 전 세계에서 우리가 가장 첨단에 있는 분야입니다. 인문학 분야에서 이런 일은 쉽지 않죠.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이자 책임편집을 맡은 이주형 교수는 간다라 미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다른 공저자들 역시 불교사, 불교사상사, 불교미술사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최신의 연구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이들 드림팀이 탄생시킨 이 책은 그래서 이 분야의 첨단입니다.

우리의 인식 속에서 한국의 인문학은 여전히 수입상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는 심지어 인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흔한 생각이지요. 그래서 연구의 목표도 수준도 결과도 계속 남들을 따라가는 정도에만 이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묵묵히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에 도전해 그만큼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인문학이 있으며 그런 인문학을 담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의 출판사들이 한국의 인문학 출판사로 책의 번역 판권을 구매하겠다고 찾아오는 날도 머지않아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임편집  이주형(李柱亨) |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미국 버클리대학 미술사학과에서 인도미술과 불교미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버클리대학 누마타불교학 초빙교수를 지냈고, 미술사와 시각문화학회 회장, 한국중앙아시아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글 | 학술팀 다돌 & 명륜동 전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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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산거북이 2010.06.10 13:53 신고 / Delete / Reply

    그렇구나....!

  2. 권대협 만세 윤은혜 만세 2010.06.16 18:44 신고 / Delete / Reply

    아.. 다돌님의 말투가 문투에도 고스란히...생생히 들리네요ㅋㅋ 다소 어려워보이는 책 내용도 재미있게 소개해주시고...역시...언제나 존경합니다...명륜동 전지현님...시체란 그런 의미가 있는 것이군요...감사합니다..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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