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닥치는 대로 걸리는 대로 미술사(닥걸미)'의 이번 차례는 <알베르티의 회화론>(노성두 옮김, 사계절 펴냄)이다. 역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남의 회사 책이다. 다만 그 지위가 절판도서로 도서관에서만 흔적을 찾아볼 수 있기에 자사 블로그에 독후감을 올리는 행위에 대한 부담이 다소간 덜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한편 본좌의 이야기가 서양미술사 일변도에 타사 도서 중심이었던 점을 반성하며, 다음에는 자사에서 출판한 한국미술사 책, 안휘준 교수의 <안견과 몽유도원도>로 가 볼 것이다. 어쨌건 다음은 다음이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니, 이번에도 본 글에 오류가 있다 해도 특별히 책임을 지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섣불리 인용하지 말기를 권하는 바이다.

외울 게 많은 르네상스

역사라면 어떤 종류의 역사건, 뭔가가 엄청나게 몰리는, 그래서 시험범위에 들면 외워야 할 것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특정한 시대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1945년을 중심으로 한 앞뒤의 몇 년은 한국현대사에서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며칠 사이로 나라가 만들어졌다가 두 쪽 나기도 하고, 삼국지 마냥 수많은 영웅들이 무더기로 등장해 화려한 초식을 선보이며 스펙타클한 드라마를 써내려간다. 그래서 1945년 전후는 한국현대사에서 뭔가가 몰리는 시대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말한 것처럼 이렇게 역사에서는 영웅과 천재, 엄청난 발명과 사건들은 대개 비슷한 순간에 빵 터지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미술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그런 순간을 서양미술사에서 찾는다면 르네상스가 한창이던 이탈리아도 그 한 장면일 것이다.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는 세기의 천재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르네상스 초입의 이탈리아 출신 ○○○이었다. 여기서 ○○○이라고 쓴 이유는 그를 무언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후예로 태어난 그는 볼로냐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것을 비롯해, 수학, 수사학, 시학 등을 공부했으며 회화와 건축에서 창작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운동경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그는 부르넬레스키, 도나텔로, 마사치오 등 당대의 A급 예술가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고, 책도 여러 권 남겼는데 고대 로마의 건축 유적을 조사하고 쓴 <로마 서술>, 건축에 대한 이론을 쓴 <건축론>, 조각에 대한 <조각론>, 그리고 회화에 대한 이론을 쓴 <회화론>이 있다.

화가들을 위한 본격 자기계발 실용서, 알베르티의 <회화론>

알레르티 상(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알베르티가 1435년에 라틴어 본을 저술하고 1436년 이탈리아어 본을 직접 번역 출판한 <회화론>은 그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화가를 위한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이다. 총 3권으로 이루어진 <회화론>의 1권은 '화가가 알아야 할 원근법과 수학(기하학), 광학'에 대한 내용이며, 2권은 '회화의 구성요소', 3권은 '화가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설명이다. 이론, 실기, 마음가짐까지 깔끔하게 구성된 시리즈의 순서는 실용서이자 자기계발서로서 손색이 없다.

게다가 그는 아주 쿨하게 화가가 되지 않을 사람은 자신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으니 괜한 고생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이 책은 화가를 위한 책이지 수학자, 철학자를 위한 책이 아니므로 책을 읽는 독자들(화가가 될 사람들)은 여기에 나온 이론 정도만 알면 되고 그 이상은 몰라도 된다고 말한다. 시험 전날 족집게 선생님에게 엄한 것 물어봤다가 듣게 되는 '그거 시험에 안 나온다'는 쿨한 멘트의 전통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론, 실기, 품성...르네상스 화가가 되기 위한 3단계

어찌되었건 이 책은 저자의 의도를 매우 충실하게 구사하고 있다. 1권은 흡사 중학교 수학교과서 기하학 파트를 보는 듯하다. '점은 면적 없이 위치만 나타내는 기호' '선은 길이로만 분할할 수 있으며 폭으로는 분할할 수 없는 것' '원은 한 점에서 같은 길이에 있는 점들의 집합' 등과 같은,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면 수학 선생님과의 잔인한 악몽과 함께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개념들이 1권에 기술되어 있다. 이렇게 유클리드 기하학의 기본적인 내용들을 해설해주고 이것을 바탕으로 원근법의 원리를 설명하며, 색과 빛은 어떤 원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우리의 눈은 어떻게 시각이미지를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광학 이론도 소개한다. 이렇게 1권은 화가가 알아야 할 기초적인 이론에 대한 것이다.

크레실라스의 페리클레스 두상조각. 알베르티는 페리클레스의 머리 모양이 위 아래로 너무 길어서 조각가인 크레실라스가 투구를 씌우는 방식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이야기한다.

2권은 회화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선, 면, 색에 대한 소개와 이것들을 토대로 어떻게 그림을 그릴 것인가 알려준다. 여기에 그림을 그릴 때 화면의 구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인물들은 어떻게 배치할 것이며,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와 같은 실용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심지어 표현하려는 대상의 머리가 너무 크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한 사례(크레실라스의 '페리클레스의 두상조각')를 소개하기도 하면서 사례가 중심이 된 진정한 실용서의 면모를 과시한다. 이렇게 2권은 실제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3권으로 넘어오면 이제 품격 있는 자기계발의 시간이다. 화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품행을 단정히 하고, 7과목으로 구성된 자유학예(Liberal Arts : 문법, 수사학, 논리학, 산수, 기하학, 음악, 천문학)에 매진하되 특히 기하학에는 특별히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인과 같은 교양인들에게 끊임없이 배움을 청하고,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는 일에 게을러서는 안 되며,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견지하라는 충고로 마무리를 짓는다. 3권에서는 훌륭한 화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체적인 조감이다.

화가를 위해 참 잘 쓰인 자기계발서인 이 책. 하지만 우리는 미술사가 궁금한 것이지 화가가 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면 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이 책을 미술사에서는 아직 읽고 있는 것일까? 이제 무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 책의 의미를 내 맘대로 해석해본다. 지난번 빈켈만 때에도 말했듯 꿈보다는 해몽이므로, 아무런 부담 없이, 전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맘대로 그 이유를 지금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화가는 단순 기능인이 아니라 인문적 연출가'

알베르티는 책에서 중요한 한 가지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던진다. 바로 연출이다. 1권에서 그는 사물이 눈에 보이는 원리에 대해 차근차근 소개한다. 하지만 화가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기하학을 공부하고 원근법을 이해하고, 색과 빛의 원리를 숙지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 위함이 아니다. 화가가 기하학, 원근법, 광학을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는 그리고자 하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정말 눈앞에 실제 있는 것처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연출을 위한 기본기를 탄탄하게 익히라는 얘기다.

2권에서도 핵심 주제는 연출이다. 알베르티는 역사화, 즉 성서 속 이야기나 신화에 등장하는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최고의 것으로 친다. 그래서 자연의 풍광을 그렸거나(풍경화), 사물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그린 그림(정물화)은 진짜 그림이 아니라 오직 역사화만이 진짜 회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역사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스토리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그것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가를 잘 상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토리를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정말 그럴 듯하게 상상할 수 있어야 연출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베르티는 화면 구성을 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연출할 수 있으며, 극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인물들의 표정과 그림의 주제가 일치해야 하는지, 한 화면에 몇 명의 인물이 배치될 때 적절한지, 어떤 식으로 색을 써야 그림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그림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다. 알베르티는 옷주름을 통해 우아함을 표현하려고 한다면 그림에 바람이 부는 장면을 넣어 옷주름이 더욱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른바 연출의 디테일까지도 해설한다.

라파엘로 작 '대공의 성모'(1506년)

3권에서는 연출가로서의 자질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화가는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것을 비슷하게 옮겨 그리는 단순한 기능인이 아니다. 화가는 자유민들의 교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학예를 익혀야 한다. 자유학예는 원래 그리스 로마에서 노동을 하는 노예가 아닌 자유민들이 배우고 익혀야 하는 교양을 일컫는 용어였다. 즉 화가는 단순 기능만 보유한 노동자가 아니라 교양을 갖춘 자유민일 것을 요구한 것이다. 또한 학식이 높은 지식인들과 교류를 많이 해, 그들에게서 지성을 얻어낼 것을 주문한다. 물론 테크닉 연마에 대한 노력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며, 훌륭한 연출을 위한 다양한 기법을 찾아내는 것에도 매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몸과 머리와 마음이 하나가 된 전인적인 연출가가 되는 것이다.

그럼 기능인이 연출가가 되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기에 알베르티는 화가들에게 이렇게 강조에 강조를 거듭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성급한 비전공자가 찾은 답은, 기능인이 연출가가 되면 스타로 다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타 화가의 탄생

앞서 말했듯 서양미술사를 뒤적이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화가라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순간이 생기는데 이때가 바로 르네상스 시기다. 그전까지는 성서에 나오는 어떤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는 정보 이외에는 누가 그렸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물론 워낙 오래전 일이니 기록이 안 남아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100여 년 차이로 수십, 수백 명의 화가 이름이 천재라 칭송되며 경쟁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기록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전에는 누가 그리든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화가의 이름을 굳이 알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어떤 크기로, 어떤 옷을 입혀, 어떤 자세로 그려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면, 그래서 그리는 사람들이 그 기준을 벗어날 수 없다면 누가 그리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런데 상황이 달라진다. 화가의 개성이라는 것이 그림에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즉 화가가 자기 그림에, 자기가 아는 기법들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담아 연출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면 같은 주제를 그려도 모두 다른 그림이 된다. 라파엘로도 보티첼리도 다빈치도,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거의 대부분 성모상을 그렸지만 그들의 그림은 모두 개성이 넘치고 느낌이 다르다. 이제는 무엇을 그리느냐에 못지않게 누가 그리느냐가 중요해졌고, 그 누구는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회화는 다른 예술매체들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매체였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회화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단순 기능인이 아닌 인문적 연출가로서의 능력을 가진 화가는 대중에게 새로운 감동을 주었고 사랑받는 스타가 되는 것이다.

스타로 분류되는 화가들의 몸값은 지금의 연예인들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그런 스타가 되기 위해 수많은 지망생들이 스타의 공방에 모여들어 연습생 생활을 했다(라파엘로의 공방에는 5~60명의 도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알베르티는 진정한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차분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의 인문주의와 스타 시스템

어떻게 보면 15세기 이탈리아 아이돌 문화의 한 단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은 르네상스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 알베르티가 살던 시기 이전에는 화가는 단순한 기능인이었다. 그리고 그가 기능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에게 기능 이외의 것은 손댈 수 없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를 그릴 때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이 신의 이름으로 정해져서 감히 깰 수 없다면 아무리 원근법을 알고, 기하학을 알아도 그 규범대로만 그려야 할 것이다. 사람은 없고, 규범만 있으니 당연히 스타도 없다. 하지만 르네상스 미술은 그 규범을 열어주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교과서에 적힌대로만 성실하게(?) 르네상스를 이해하자면, '인간을 재발견하고 인문정신을 구현하고...'라는 멘트와 옆에 자리한 누드화 하나를 보고 '아 인간을 저렇게 재발견한 게 르네상스인가?'하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다고 <플레이보이>나 <펜트하우스>를 놓고, 어쨌건 그와 유사한 그림들(?)이 많으니 여전히 인간의 재발견을 꿈꾸는 르네상스적 작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을 재발견했다는 것은 알베르티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간에게 규범을 넘어선 연출의 여지, 즉 개성을 허용하게 되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감동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뜻이 아닐까?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르네상스 미술이 어떤 덕목을 요구했는가를 엿보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그 기회는 사람이 미술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어떻게 자신의 개성을 공개했는지, 그리고 그것을 공개하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되지 않을까라고 대략 근거 없이 추측해본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글 | 학술팀 다돌

Bookmark and Share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본좌의 학부 전공은 법학과. 허나 입학 당시부터 남의 송사에 휘말리는 것을 싫어하여 전공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대학시절을 보내고 졸업이 임박하자 일단 출판사에 이력서 넣기를 감행한다. 다행스럽게도 입사 지원자를 다면평가하지 못했던 당시 인사담당자들의 실수로 인하여 취직에는 성공하였으나 행운은 여기까지(참고로 현재는 입사지원절차가 매우 복잡해졌다. 본좌가 자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바라고 자부하고 있다). 출근 후 배치를 받은 곳이 바로 학술팀 미술사 편집부였던 것이다. 대학시절 2학점짜리 서양미술사 교양 하나 듣고, 군대시절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한 번 읽은 게 전부였던 상황에서 미술사 책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법대 출신 편집자의 '생계형 미술사 탐방기'

그로부터 3년... 본좌는 여전히 미술사 책을 만들기 위해 아등바등 하고 있으니 남몰래 흘려야 했던 눈물이 바다를 이루었고, 오늘도 매 순간 사고를 치며 가슴 한켠을 움켜잡아야 하는 본좌의 심정을 독자분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생계가 걸린 문제,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라도 '미술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더듬어야 했다. 그렇게 더듬더듬 하다가 잡히는 대로 읽고, 걸리는 대로 보는 야인과 같은 미술사 탐방기를 가끔 남기려 하니 오늘이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다만 본좌가 대학시절 학문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 체계적 독서는 애시당초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또한 유치원생도 영어로 쎄쎄쎄를 하는 작금의 현실에 온몸으로 저항하며, 오로지 한글 읽기 기능만 유지하자는 독립군적 마음가짐으로 인하여 세련되게 외국어 원서를 읽는 등의 우아한 독서 역시 불가능하다는 점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물론 그러하기에 대다수의 한글 전용 미술사 독자들과 같은 길을 갈 수 있다는 동질감과 자부심을 가슴에 아로새기고 첫 발을 내딛는다.

오늘 소개하려는 것은 책이다. 서양미술사 관련 논문집을 편집하다 어느 참고문헌에선가 발견한 한글화된 몇 안 되는 미술사 고전이다. 다만 타사의 도서를 자사의 블로그에 소개하는 위험천만한 짓을 하는 것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본좌의 생사여탈권을 지니고 있는 CEO가 그저 이 글을 못보고 지나가기만을 우리 다 같이 기도해보기로 하자. 게다가 이 독후감은 미술사와 관련해 어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본좌의 이야기라 도처에 구멍이 많다는 점을 부인할 수도 없다. 그저 너무 많이 틀린 이야기가 아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다.

* 참고로 본좌의 글에 오류가 있다 해도 특별히 책임을 지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섣불리 인용하지 말기를 권하는 바이다. 

그리스 미술 모방론 | 요한 요하힘 빈켈만 지음 | 민주식 옮김 | 이론과 실천 펴냄 | 263쪽


최고의 미남, 미녀를 뽑아라

외모만을 놓고 보았을 때 미남, 미녀가 최고로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지상낙원일 것만 같은 그곳은 바로 그리스라고 한다. 그럼 왜 유독 그리스에는 미남, 미녀가 많은 걸까? 이유는 대략 허무하다. 그리스에 미남, 미녀가 많은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 사람들이 예쁘고 잘생겼다고 배웠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움의 기준을 교과서에 등장하는 그리스 조각상이라고 배운다. 그런데 그리스 조각상은 당연히 그리스 사람을 보고 만들었을 것이고 그러하니 그리스 사람이 잘생기고 예뻐 보인다는 얘기. 
 
물론 이런 이야기는 근거 없이 제시할 경우 매우 위험할 수 있다. 반대로 힘을 빼고 얘기하면 믿거나 말거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술자리 토크 소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사실이라면, 아름다움과 미의 기준이 학습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되는 것이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미의식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면 등골이 오싹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에서 아리아인의 우월한 혈통을 설계한 히틀러의 인종 청소도 결국 파고 들어가다 보면 앞서 이야기한 지점에서 비슷하게 만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예쁜, 즉 우월한 인종이 지구를 지배해야 한다는 생각의 시작이 그곳에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리스 미술, 지존으로 등극하다

어쨌든 빈켈만의 <그리스 미술 모방론>은 그리스 미술이 서양미술, 더 나아가 온 인류의 역사에서 최고로 칭송받아야 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 있는 책이다. 그리스 조각상을 분석해 그 작품들에서 절대 미의 기준을 찾아낸 이야기는 이후 미술사 분야는 물론 다양한 분야에 꽤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괴테도 빈켈만의 작업을 칭송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 덕분에 서양미술사 맨 앞자리는 통상 그리스 미술이 차지하게 되었고, 간혹 이집트나 소아시아 지역의 미술이 등장한다고 해도 그리스 미술이 완벽해지기 위한 도우미 정도의 역할로 등장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미술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그리스 조각상이 등장하는 것이 다 이 분의 이 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얘기.

하지만 그 정도의 이야기라면 미술사를 탐험하기 위해 굳이 예전에 돌아가신 독일 사람의 이야기를 일독까지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평범한 이유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있기에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무한 상상력을 동원해 이 이야기가 가진 의미를 내 맘대로 해석해보기 시작하자. 꿈보다는 해몽이므로, 아무런 부담 없이, 전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상태에서 내 맘대로 그 이유를 지금부터 찾아볼 생각이다. 

요한 요하힘 빈켈만

요한 요하힘 빈켈만(1717 – 1768)

요한 요하힘 빈켈만은 독일 사람으로 1755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고 한다. 1755년이면 조선에서는 영조대왕의 치세, 중국은 건륭 치세로 동아시아는 그야말로 최전성기였다. 한편 유럽에서는 그런 아시아를 어떻게든 따라잡아 보겠다고 프랑스와 영국이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고 있던 때이다. 하지만 독일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유럽에서 국제분쟁이 터졌다 하면 결투는 늘 독일 땅에서였다. 그런 비운의 독일 땅에서 통일된 민족국가가 싹을 보이기 시작하려면 아직도 100년이나 더 기다려야 했다. 산업혁명이다 시민혁명이다 유럽이 들썩거릴 때도 독일은 봉건 장원이 굴러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별 볼 일 없는 제후국들의 모임이었다. 한마디로 빈켈만은 썩 잘 나가는 동네 사람은 아니었다. 

한편 책을 낼 수 있었던 배경도 당황스럽다. 저자가 주로 분석한 미술작품들은 그리스 조각상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진품이 아니었다. 그리스 조각 작품들 가운데 로마시대에 이미테이션으로 복제되었던 것들이 로마제국 멸망 후 폐허 속에 묻히게 된다. 그런데 골동품 취향이 있던 몇몇 귀족 가문에서 그 작품들을 실내 인테리어 장식용으로 도굴에 가깝게 파냈다. 그리고 자기네 집 장식장에 슬쩍 가져다 놓았던 것이 바로 빈켈만이 분석한 주요 작품들이었다.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동네에서, 남의 집 인테리어 장식품을 보고 쓴 글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길래 오늘 이 자리에서 소개되고 있는 것일까?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미술사가 만드는 근대

빈켈만은 그리스 미술,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스 미의식에 극도의 찬사를 보내며 경외심을 표명한다. 그리스 미술이 '고요하지만 장엄한' 미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조각상과 회화 작품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길 인류 최고의 미의식은 그리스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을 당대에 복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웅변한다.

코나도스의 아프로디테(로마 바티칸 미술관)

사실 내용상 특별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분석이나 톡 쏘는 이야기, 무릎을 치게 만드는 탁견 같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그리스 미술의 우월성을 강조하다 보니 손발이 오글오글해지는 무안한 부분이 적지 않으며, 분석이라는 것이 뚜렷한 근거에 기준했다기보다는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저자의 분석틀에 기초하다보니 주관적 감동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이 양반의 이야기가 서양미술사, 미학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 그런지 예술작품 해설도 그리 낯설지 않고, 그렇다고 분석하는 작품이 많은 것도 아니어서 심지어 심심한 느낌도 있다.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 글이 지금 의미를 갖는 것일까? 혹 이 책에 미술사를 통해, 근대라는 유럽의 족보가 만들어졌던 흔적이 남아 있어서는 아닐까?
 
먹고살 만해지면 족보부터 찾는다

유럽은 아주 오랜 기간 변방에 머물렀다. 아주 최근까지도 인간이 만들어낸 대부분의 재화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생산되고 소비되었으며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 역시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유럽이 전 지구적으로 주목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0여 년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이었을 뿐이다. 유럽은 늘 변두리였다.
 
그런데 200년 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기계를 만들고,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 물건을 찍어내고 자본주의적 시장을 만든다. 유럽이 잘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뭔가 서서히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무렵 유럽은 새로운 고민에 빠지게 된다. 기계를 만들고, 공장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해 물건을 찍어내기 시작해 장사도 하고 돈도 차곡차곡 모아는 가고 있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강렬하게 밀려온다. 먹고 살만해지면 족보부터 사려는 것이 인지상정. 유럽의 엄청난 상승세를 하나로 정리해 줄 개념이 필요했던 것이다. 유럽이 가고 있었던 길을 하나로 정리해 줄 수 있는 '근대'라는 개념 말이다.
 
그런데 이 개념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지는 것은 아닌 터라 모델로 삼을 뭔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바로 그리스와 로마이며 특히 그리스였다. 사실 지리적으로 보자면 그리스는 아시아에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심지어 당시만 해도 이슬람 세력인 투르크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는 당시 유럽인들에게 모델로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펼쳐졌던 정치형태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가공되어 근대 정치의 개념적 뿌리가 되었다. 이미 일정 정도의 양성평등을 이룩했고, 실질적인 의미의 노예제가 사라졌던 페르시아와 달리, 여자를 애 낳는 기계 정도로 생각하고 노예는 말하는 노동 기계 정도로 생각했던 그리스의 정치형태에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 서구 유럽식 정치체제의 사상적 근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시민혁명이라는 그럴 듯한 모양새를 통해 탄생한 서구사회의 민주정치에서 여성이 투표권을 행사하고 노예제가 사라진 것은 사실 최근의 일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서구의 민주주의라는 것과 그리스의 정치체제는 참으로 교묘하게 겹친다).

이렇게 그리스와 로마는 새롭게 성장하는 서구의 정신적,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와 로마는 근대의 기준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빈켈만 역시 미술사에서 그리스를 찾아낸다. 그도 그리스를 통한 근대의 개념을 만드는 유럽의 초창기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술사로 만드는 근대인 것이다.

미술사로 정리한 근대적 사고방식

한편 빈켈만은 그리스 미술에서 '고요함 속의 장엄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진짜 고요함 속에 장엄함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류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라는 개념을 따로 분리해서 사고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이 미술사에서도 정리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빈켈만은 전적으로 '미'라는 개념을 분리해서 이야기한다. 미는 특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숭고하고 정신적인 불변의 그 어떤 것이며 그것을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기준이라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것을 그리스 미술에서 찾은 것이다. 어쨌건 빈켈만은 미라는 것을 독자적인 무엇으로 분리시킨다.

독일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빈켈만박물관

그런데 근대라는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에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표현하는 '화가'라는 직업이 있었을까? 미켈란젤로는 건축가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자이자 요리사였다. 도화서의 화원들은 화가가 아니라 국가기록물을 기록하는 기자였으며 불상을 조각하는 사람은 조각가가 아니라 일체대중을 구제하고자 하는 스님, 즉 종교인이었다. 그런데 빈켈만의 그리스 미술 모방론이 등장하면서 건축가, 과학자, 기자, 종교인으로부터 화가가 분리될 수 있었다. 교회에 오는 신자들이 헌금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각적 감동을 유발시키기 위해 보기 좋게 장식을 하고, 공동체의 대소사를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성원들을 위해 시각적 기록으로 남기는 하나의 도구였던 미술이 그 어떤 가치도 개입될 수 없는 순수한 어떤 것이 되었다.
 
빈켈만이 미술사에서 이런 작업을 진행했다면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작업이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 이전에 학문의 분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라는 개념과 함께 학문은 급속하게 분리된다. 이것은 '미'가 빈켈만 식으로 분리된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따로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따로 분리시킬 수도 없었을 뿐더러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세상 살아가는 일이 모두 연관되어 있는데, 수요와 공급 문제 하나만 딱 분리해서 분석하면 뭔가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분리할 것인가 정확하지도 않을 뿐더러 분리한다고 해도 세상 모든 것이 다 함께 엮여서 돌아가는 것이 이치인데 그걸 분리한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근대적 사고방식은 순수한 경제학을 탄생시켜 이 복잡한 세상의 먹고사는 문제를 그래프 2개로 정리해버리며 그것을 신봉하기 시작한다. 빈켈만이 '고요한 장엄'을 정립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도 그렇게 정립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빈켈만의 작업은 미술사를 통해 근대라는 개념을 정립시켰던 꽤 유력한 작업은 아니었을까? 이제 다음 책은 시간을 거슬러 르네상스 시대로 올라간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으로 가볼 것이다. 물론 언제 갈 수 있을지는 기다려봐야 할 문제이지만 말이다.

글 | 학술팀 다돌





Bookmark and Share

코멘트를 남겨주세요

BLOG main image
사회평론 블로그
좋은 책,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입니다. 트위터 계정은 @ebricks
분류 전체보기 (111)
성산동 114번지 (42)
미술샤방(다돌) (8)
考古閑談(명륜동 전지현) (6)
삼성을 생각한다 (34)
사회평론의 책들 (21)

검색

인생은 뜨겁게 - 10점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사회평론
삼성을 생각한다 - 10점
김용철 지음/사회평론
인문의 스펙을 타고 가라 - 10점
이동진 외 지음/사회평론
Top